세계적인 로봇 기술력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경영진이 지난달 말 대거 한국을 찾았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2021년 약 1조원에 인수해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이 회사의 핵심 인사들이 이번에 방문한 이유는 현대차 때문이 아니었다. 로봇 스타트업 ‘클로봇’과 손잡고 한국 시장 진출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클로봇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파트너십을 맺은 로봇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다. 김창구(50) 클로봇 대표는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기 전부터 협력해왔다”며 “실제 현장에서 로봇을 운용했을 때 클로봇이 가장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산업용 4족 보행 로봇 ‘스폿’에는 모두 클로봇의 로봇 제어·관제 소프트웨어가 탑재돼 있다.
클로봇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서비스 로봇 개발자 출신인 김 대표가 2017년 세웠다. 국내 로봇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확실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70% 이상이었고, 작년에는 242억원의 매출을 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이달 말 로봇 소프트웨어 분야 최초로 코스닥에 기술 특례로 상장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실내 자율 주행 로봇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며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현대로보틱스 같은 로봇 제조 기업부터 서비스·물류·병원 등 130곳이 넘는 고객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클로봇은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는 다른 로봇 기업과 달리 소프트웨어 분야에만 집중해 남다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로봇 제조사가 달라도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클라우드(원격 가상 서버) 기반의 실내 자율 주행 소프트웨어(카멜레온)를 개발한 것이다. 또 운영체제가 다른 로봇 100대를 동시에 모니터링·관리 가능한 통합 관제 소프트웨어(크롬스)도 출시했다.
김 대표는 “우리 기술의 특장점은 모든 로봇에 적용 가능하다는 범용성”이라며 “공장 로봇은 컨베이어 벨트 바로 앞에서 멈춰서는 정지 정밀도가 중요하고, 서빙 로봇은 장애물을 피하는 기능이 중요한데 한 소프트웨어에서 이를 모두 구현해낸다”고 말했다. 실제 롯데백화점 본점 쇼핑 도우미 로봇 ‘페퍼’, KT-롯데월드타워 안내 로봇, 국립암센터의 의료 보조 로봇, 현대차 제조 공장 로봇 등에 모두 클로봇 소프트웨어가 탑재돼 있다.
김 대표가 로봇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하게 된 계기는 과거 실패 경험에 있다. 그는 KIST 재직 시절 연구원 출자로 설립됐다가 경영난으로 매각된 로봇 제조 스타트업 ‘로보케어’의 창업 멤버였다. 당시 직접 로봇을 만들면서 스타트업은 소프트웨어 쪽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직접 금형도 만들고 큰 비용을 들여 개발했지만, 양산이 쉽지 않았고 음성 인식 기능 같은 개발 트렌드 변화를 이미 완성된 로봇에는 반영하기 어려웠다”며 “자금력이 부족하지만 유연한 조직인 스타트업에 맞는 것은 제품 제조보단 서비스 공급자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로봇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를 담는 그릇인 로봇 분야 투자도 늘고 있다”며 “로봇 개발 비용이 낮아지고, 로봇 사용료가 인건비 이하가 되면 시장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