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독점 기업 판결을 받은 ‘검색 공룡’ 구글에 대해 브라우저(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크롬’의 강제 매각을 법원에 요청하기로 했다. 크롬은 사용자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구글의 프로그램으로, 구글이 전 세계 검색 시장의 약 91%를 장악하도록 하는 핵심 사업이다.
구글은 지난 8월 법무부와 소송에서 패소하고, 검색 시장을 불법으로 독점하고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구글에 대한 처벌 수위를 고민하던 법무부는 구글의 검색 독점 지위를 깨고 시장 경쟁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회사를 쪼개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글에 대한 최종적인 시정 명령은 법원이 내린다. 시기는 내년 8월쯤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법무부의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1984년 AT&T 분할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반독점 관련 대기업 사업 분할이 된다. 블룸버그는 “법원이 강제 분할 명령을 내리면, 구글 일변도의 온라인 검색 시장과 미래 AI(인공지능) 산업이 재편될 수 있다”며 “이는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MS)를 분할시키려던 시도가 실패한 이후 정부가 빅테크를 통제하기 위해 보여준 가장 공격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크롬 매각은 구글에 치명적
구글에 대한 반독점 소송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됐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미 법무부와 일부 주(州)는 조사를 거쳐 2020년 10월 “구글이 검색 엔진 시장에서 독점적 지배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애플과 삼성전자 등에 거액을 지급하며 반독점법을 어겼다”고 제소했다. 지난 8월 구글은 법원으로부터 검색 시장에서 독점 기업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무부가 사업 분할 대상으로 크롬을 정조준한 이유는 사업적 중요성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대부분 크롬을 이용해 구글의 검색 엔진에 접속한다. 크롬을 매각할 경우, 구글이 입을 타격은 막대하다. 지난 3분기 구글의 매출 중 광고 수익이 70%를 차지하는데 크롬은 광고 사업의 핵심이다. 구글은 크롬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을 파악하고 이 데이터를 사용해 맞춤 광고를 한다. 또 구글은 크롬 검색 결과에 자사 인공지능(AI) 챗봇 제미니의 답변을 포함시키고 있다. 크롬 사용자들이 구글 AI 모델 제미니의 고객이 되는 것이다.
크롬이 구글에서 분할돼 매각될 경우, 새로운 크롬 경영진은 구글의 검색 엔진이 아닌 보다 싼 비용의 타사 검색 엔진을 탑재할 수 있다. 구글 입장에서는 막대한 검색 광고 수익과 데이터, 제미니 잠재 고객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MS)나 오픈AI, 퍼플렉시티 등이 AI 검색을 내세워 구글의 아성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크롬이 없으면 검색 시장에서 구글의 지배력이 급속도로 약화될 수 있다.
법무부는 이번에 크롬 매각과 함께 구글이 검색을 통해 취득한 데이터를 경쟁사와 공유하도록 제안하기로 했다. 또 구글이 검색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도 법원에 제안할 예정이다.
◇인수자 찾는 게 가장 큰 관건
크롬 매각이 최종 결정될 경우, 인수자를 찾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크롬에 관심이 있고, 이를 인수할 만한 자금력이 있는 아마존·메타 등의 빅테크들은 반독점 조사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 등 AI 기업이 인수자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크롬 사용자를 기반으로 AI 챗봇이나 AI 비서의 구독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고, AI와 크롬을 결합한 광고 사업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구글로서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강제 매각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구글은 삼성 등 안드로이드 O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제조사에 비용을 지불하며 구글 검색 엔진을 기본으로 탑재해왔다.
법원 판결에 구글이 항소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크롬 매각 결정이 연기되거나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글의 규제 업무 담당 부사장인 리앤 멀홀랜드는 “정부가 이 사건의 법적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급진적인 의제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런 식으로 손을 대는 것은 소비자, 개발자, 미국의 기술 리더십에 모두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