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상훈

국내 1위 게임사인 ‘넥슨’이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사용자들에게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수익의 일부를 고객들에게 돌려주게 됐다. 대법원은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한 이용자가 넥슨을 상대로 낸 매매 대금 반환 소송에서 결제 대금의 5%를 돌려주라는 2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게임사의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이번 재판은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김모씨가 2021년 ‘넥슨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구체적인 확률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확률형 아이템은 돈을 내고 아이템을 무작위로 뽑는데, 좋은 아이템일수록 나올 확률이 낮다. 게임사 입장에선 확률을 낮춰 이용자들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결제를 하도록 유도한다. 1심 재판부는 넥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넥슨이 김씨에게 전체 대금의 약 5%를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아이템 5% 확률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넥슨의 의도적, 계획적 설정의 결과”라고 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단체 소송과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법 제정 등 관련 규제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 후폭풍

넥슨의 확률형 아이템 조작 사건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큐브’는 캐릭터 능력을 높여주는 옵션들 중 3가지를 특정 확률에 따라 무작위로 받을 수 있었다. 수억원을 쓰고도 원하는 옵션이 나오지 않자 이용자들이 의혹을 제기했다. 공정위 조사를 통해 넥슨이 특정 옵션의 확률을 0%로 만드는 등 이용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한 사실이 드러났다. 넥슨은 공정위로부터 시정 명령과 함께 약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집단 조정을 통해 이용자 80만명에게 219억원 규모의 역대 최대 보상을 하기로 했다.

그래픽=박상훈

이번 대법원 판결은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717명이 지난 2월 넥슨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용자들은 보상과 별개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만큼 결제 대금 일부를 환불해달라며 넥슨을 상대로 5억원 규모의 단체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공정위 조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게임사 그라비티가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온라인’를 비롯해 위메이드 ‘나이트 크로우’, 웹젠 ‘뮤 아크엔젤’ 등은 잘못된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이용자들에게 고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사 효자 상품이던 확률형 아이템이 이제 가장 큰 리스크로 바뀐 것”이라며 “각 게임사에 대한 이용자들의 단체 소송이 줄 이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높아지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해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최대 세 배의 징벌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

규제 수위가 높아지자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을 구독형 요금제로 바꾸고 있다. 넥슨은 올해 초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출시하며 정액 요금을 내면 다양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요금제를 선보였다. 엔씨소프트도 최근 글로벌 출시한 신작 ‘쓰론 앤 리버티(TL)’에 한 번 구입하면 일정 기간 동안 아이템 등을 받을 수 있는 ‘배틀패스’를 적용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 반감과 규제 리스크가 커져 일부 매출을 포기하더라도 다른 수익 모델을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확률형 아이템

특정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마치 문구점 ‘뽑기’처럼 돈을 내고 아이템을 뽑는 시스템이다. 좋은 아이템일수록 나올 확률이 낮아, 이용자들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으려고 계속 구매하게 된다. 게임사는 아이템의 확률을 조정해 이용자들의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식으로 수익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