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하경

‘빅테크 저승사자’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주도해 온 미 정부와 빅테크 간의 ‘반독점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차기 FTC 위원장으로 앤드루 퍼거슨 현 FTC 위원을 지명했다. 퍼거슨은 기업 독점 전문 변호사이지만, 칸 위원장보다 현실적이고 친기업적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칸 위원장은 2021년 FTC 위원장에 취임한 후 빅테크를 겨냥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독점 정책을 주도해 왔다. 미 법무부와 함께 구글의 브라우저(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크롬’ 강제 매각 판결을 이끌어 냈고, 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메타 등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빅테크 향한 칼날 무뎌져

칸 위원장이 ‘저승사자’로 불린 이유는 거대 기업 독점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앞세워 규제를 강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기존 미국에서 독점의 판단 기준은 ‘독점으로 소비자 선택 폭이 줄어들거나 권익이 침해됐느냐’ 여부였다. 칸 위원장은 예일대 로스쿨 재학 중이던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마존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낮춰 경쟁 상대를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독점했다”고 주장했다. 당장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아도, ‘소비자 독점’ 현상이 발생하면 미리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칸 위원장과 바이든 행정부는 빅테크가 플랫폼과 IT 산업을 독식하면서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으면 곧장 ‘반독점의 칼’을 빼들었다.

그래픽=김하경

칸 위원장은 취임 직후 “FTC는 항상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기업을 상대로 더 많은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칸은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아마존과 구글, 메타, MS 등 대부분의 빅테크를 상대로 독점 지위 남용이나 시장 경쟁 제한이란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고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1년 동안 FTC가 아마존에 대해서 반독점 소송을 건 것만 네 건이다. 지난해 9월에는 독점 지위 남용 혐의로 소송을 걸면서 자산 매각을 압박하기도 했다. 빅테크가 인수·합병(M&A)으로 독점을 강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 인수에도 제동을 걸었다. MS의 블리자드 인수와 메타의 가상현실(VR) 업체 위딘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가 두 번 다 졌다.

역대 최대의 기업 분할이 될 것이라는 구글 반독점 처분의 뒤에도 칸 위원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법원은 구글을 ‘독점 기업’으로 최종 판결했고, 미 법무부는 구글 웹브라우저인 크롬 매각을 요청했다. 법원이 이를 최종 수용하면, 미국에서 약 40년 만에 반독점 관련 대기업 사업 분할이 된다. 이 역시 칸 위원장이 주장하는 ‘소비자 독점 단계에서의 규제’라는 기준이 적용됐다.

메타도 FTC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 때문에 자사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와츠앱 강제 매각 위기에 놓였다. 재판은 내년 4월에 열린다.

◇빅테크 옥죄던 고삐 풀리나

칸 위원장의 뒤를 잇는 퍼거슨 지명자는 법조계에 오래 몸담았고, 특히 변호사 시절에는 독점 관련 소송을 주로 맡아 이 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학계와 싱크탱크 위주로 경력을 쌓았던 칸 위원장보다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FTC 위원장 교체에 빅테크와 시장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두 건의 반독점 소송에 휘말린 구글의 주가는 퍼거슨 지명 소식이 나온 뒤 전일 대비 5.5% 올라 사상 최고치인 196.71달러에 마감했다. 뉴욕타임스는 “월가(街)는 대형 M&A에 대한 규제 완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거래 활동이 늘어나길 바라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성장 친화적’인 의제를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FTC 수장이 바뀌어도 빅테크의 독점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당장 무뎌지진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퍼거슨 지명자는 최근 트럼프 당선인 정권 인수팀에 FTC가 현재 진행 중인 빅테크의 불법 시장 지배와 관련된 조사는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칸 위원장이 내세웠던 인공지능(AI) 규제 및 엄격한 기업 합병 기준 등 일부 의제는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FTC가 지금과는 달리 빅테크를 대하는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퍼거슨 지명자는 X에 “미국이 세계의 기술 리더이자 혁신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리나 칸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출신으로 2021년 6월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당시 역대 최연소(32세)로 취임했다. 예일대 로스쿨 박사 과정 재학 중이던 2017년 발표한 졸업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로 화제가 됐다. 파키스탄계로 198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1세에 미국으로 이민했고, 인문학 명문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학부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