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인근 ‘삼성전자 테일러 캠퍼스’ 건물 뒤로 새 반도체 생산 라인 건설이 한창인 모습. 미국 상무부는 지난 20일 삼성전자에 47억4500만달러(약 6조9000억원)의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테일러에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데 37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테일러(텍사스)=오로라 특파원

내년 정권 교체를 앞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일 삼성전자에 47억4500만달러(약 6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을 최종 확정했다. 삼성전자가 대미 투자 규모를 10조원가량 축소하면서, 보조금 규모도 당초 예비거래각서(PMT)에서 제시됐던 금액보다 약 2조4000억원 삭감됐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비롯한 반도체 사업 전반에서 고전하고 있는 만큼, 투자 규모를 줄여 효율화에 나서는 실리를 챙겼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날 상무부는 SK하이닉스에 대해 4억5800만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최대 5억달러의 정부 대출 지원도 최종 확정했다. 예비거래각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보조금 지급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이번에 맺은 최종 계약은 다르다. 반도체 보조금에 비판적인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모두 보조금 지급을 확정받으며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이다.

◇미국 투자 줄인 삼성

미 상부부는 이날 “시장 상황과 회사가 투자하는 범위에 맞춰 보조금을 변경했다”고 했다. 상무부는 지난 4월 삼성전자에 64억달러의 보조금을 배정했었지만, 최종 지급 금액은 당초 금액에서 26%가량 삭감됐다. 이는 앞서 보조금을 확정받은 대만 TSMC, 마이크론, 인텔 등 주요 기업 중에서 가장 큰 삭감 규모다.

그래픽=양진경

삼성전자의 보조금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회사의 대미 투자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030년까지 440억달러를 테일러시에 투자한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이날 상무부는 “삼성전자가 향후 수년간 3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하며 전체 투자액이 70억달러 줄어들었음을 시사했다.

대미 투자액을 줄인 것은 삼성전자 안팎에선 ‘수요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공장을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수주 부진으로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에 이어 올해도 수조 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운드리 설비 중 일부 가동을 중단하기까지 한 상황에서 신규 생산 라인 건설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10월 로이터통신과 만나 “(테일러 투자는) 변화하는 상황으로 조금 힘들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테일러 공장도 2024년 하반기 가동 목표를 2026년으로 미룬 상태다.

보조금 규모는 줄었지만, 삼성전자의 최종 투자 대비 보조금 비율은 12.7%로 11.8%의 SK하이닉스, 10.7%의 TSMC, 7.8%의 인텔 등 주요 기업 대비 가장 높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와 오랜 협상 끝에 최선의 결과를 받아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5대 반도체 기업과의 보조금 협상을 모두 마친 21일, 월스트리스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을 저지하려는 것은 헛고생”이라면서 수출 통제보다는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장려하는 반도체법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리스크 하나 줄였지만∙∙∙트럼프 정부 대처는 과제

삼성전자가 수조 원이 넘는 보조금을 확정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단 내년 1월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반도체법에 매우 비판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전인 지난 10월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 인터뷰에서 반도체법을 “정말 나쁜 법”이라며 “우리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보조금을) 한 푼도 내놓지 않아도 됐다”고 말했다. 보조금을 주는 대신 해외에서 수입하는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반도체법은 공화·민주 양당 모두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의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대부분의 실제 지급은 결국 트럼프 임기 중에 이뤄진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위한 평가 기준과 절차를 까다롭게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