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이폰으로 이용자 음성을 수집하고, 이를 맞춤형 광고에 활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집단소송에서 소비자들에게 거액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애플은 총 9500만달러(약 1400억원) 규모의 예비 합의안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연방법원에 냈다고 로이터통신이 2일 보도했다.
사건 발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아이폰 이용자가 “아이폰 음성 비서 ‘시리’가 무단으로 사적 대화를 녹음해 광고주에게 제공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한 사용자는 주치의와 시술에 대해 사적 대화를 나눴는데, 아이폰에 이 치료와 관련한 광고가 떴다고 했다. 또 다른 원고는 나이키 운동화에 관해 대화하자 그 신발 광고를 받았다고 했다. 시리는 원래 “헤이 시리” “시리야”라고 불러야 반응하는데, 원고 측은 시리를 호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리가 몰래 작동해 대화를 녹음하고 광고주에게 넘겼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합의금 지급에 동의했으나, 개인 정보 무단 수집은 여전히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안이 최종 확정되면, 원고들은 애플 기기당 20달러(약 2만9000원)를 받는다.
◇스마트폰이 사용자 음성 수집해 광고
스마트폰과 AI 스피커 등장 이후 ‘빅테크들이 대화를 엿듣고 광고를 띄운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스마트폰 주변에서 특정 단어와 주제가 들어간 대화가 오가면, 이를 기기가 인식해 사용자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앱에 관련 광고를 띄운다는 것이다. 미국 이용자들은 구글, 아마존에 대해서도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의 음성 비서인 보이스 어시스턴트, 아마존 음성 비서 알렉사가 음성을 무단 수집해 광고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음성 수집 의혹이 수면으로 떠오른 때는 2019년이다. 아마존이 수천 명을 고용해 AI 스피커 알렉사의 음성 녹음을 정리·분석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마존은 ‘AI 성능 개선’ 목적이라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컸다. 이용자 반발이 이어졌고, 애플·구글·페이스북(현 메타)이 “음성 녹취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페이스북의 마케팅 파트너 중 한 곳인 미국 콕스 미디어 그룹의 홍보 자료가 공개됐는데, 스마트폰 마이크로 음성 데이터를 수집해 맞춤형 광고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이 회사가 구글·아마존·페이스북을 자사 고객으로 소개하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빅테크들은 이런 의혹을 부인하며 “특정 대화 이후 광고가 나타났다면, 종전에 입력한 특정 관심사 관련 자료를 분석한 알고리즘 때문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음성 수집 막으려면
국내에서도 음성 무단 수집 관련 의혹이 계속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글과 유튜브가 고객의 음성 정보를 과다하게 수집한다”고 했다. 한 의원은 특정 게임 이야기를 하니 유튜브에 게임 광고가 떴다는 제보도 공개했다. 이에 대해 구글코리아는 “구글은 음성 정보를 수집하거나 활용하지 않는다고 본사에서 확인받았다”고 했다.
최근 수년간 사용자의 말을 누가 듣는 것 같은 맞춤형 광고가 계속 문제가 됐고, 유럽연합이 이를 규제하고 나서자 구글·애플 등 빅테크는 이용자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를 차단하거나 아예 음성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가장 먼저 정책을 바꾼 곳은 애플이다. 애플은 2021년 앱을 설치할 때마다 ‘개인 정보 수집 여부’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우려한 이용자들이 개인 정보 제공 거부를 다수 선택했고, 광고 수입에 타격을 받은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가 이에 공개 반발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맞춤형 광고와 음성 수집 기능을 모두 끄는 방법을 공개하고 있다<그래픽 참조>. 스마트폰 설정을 바꿔 마이크 기능을 끄고, 맞춤형 광고 기능을 차단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