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CES 2025에는 인간의 오감(五感)을 강화해 주거나 재현한 기기들이 대거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감각 기능을 돕거나 일상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는 제품들이다.
미국 스타트업 ‘엘르히어’는 AI 기반 스마트 보청기 ‘엘르히어 비욘드 프로’를 공개했다. 지난 5일 시끄러운 행사장에서 무선 이어폰처럼 생긴 기기를 양쪽 귀에 꽂자, 쳐다보는 방향 1m 앞 사람들의 대화가 똑똑히 들렸다. 옆이나 뒤에서 나는 소리는 음소거 기능으로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설정을 360도로 바꾸자 일반적인 보청기처럼 모든 방향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기기에는 주변 소리를 초당 500번 분석하는 AI 기술이 적용됐다. 듣고 싶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면 AI가 방향과 음향을 탐지해 선명하게 들려준다. 반면 다른 방향에서 오는 소리와 이명은 줄여준다. 기기를 낀 채 한국어로 말하면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에 영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된 텍스트가 나타나는 기능도 구현됐다.
홍콩 스타트업 ‘비디랩스’는 성냥갑보다 작은 시각장애인 지원 기기 ‘시커(Seekr)’로 접근성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카메라가 탑재된 기기를 티셔츠에 고정한 뒤 버튼을 누르면 기기가 전방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말로 바꿔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설명해준다. 예컨대 “12시 방향 1m 앞에 계단이 있습니다” “벤치에 사람 2명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등 상황을 알려주는 식이다. 마트에서 과일이나 과자 봉지를 들면 무슨 과일인지, 어떤 제품인지 알려준다.
인간의 후각으로는 불가능한 마약 탐지 AI 기기도 전시에 나왔다. 국내 스타트업 일리아스AI는 AI 마약견 ‘스니퍼도그’를 개발했다. 마약류나 특정 화합물의 냄새를 디지털 데이터로 학습했다. 공기를 포집해 AI 기반 후각 인식 기술로 냄새를 감지하고 마약 여부를 분석한다. 기존 물리적·화학적 탐지와 다르게 접촉 없이 빠르게 검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 식품회사 기린 홀딩스는 소금을 넣지 않아도 짠맛을 더해주는 숟가락 ‘일렉트릭 솔트’를 공개했다. 혀에 전기 자극을 가해 음식의 짠맛을 더 느끼게 해 저염식을 돕는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생활 속에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반려 로봇도 관심을 끌었다. 일본 업체 믹시가 개발한 물방울 모양 로봇 ‘로미’는 스크린을 통해 각종 표정을 표현하고, 과거 대화를 기억해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반려 로봇이다. 믹시 관계자는 “더욱 인간화된 로미가 많은 사람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CES 특별취재팀]
변희원 팀장, 윤진호·오로라·이영관·박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