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부진 여파로 지난 4분기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6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적자 지속과 고부가가치 반도체인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3E)의 엔비디아 납품 지연, 여기에 캐시 카우(핵심 수익 창출원)인 메모리도 중국의 저가 공세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8일 연결 기준 지난 4분기 매출 75조원, 영업이익 6조5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65%, 130.5% 상승했다. 하지만 이는 시장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증권가에서 전망한 삼성전자 실적(에프앤가이드의 실적 평균 기준)은 매출 77조4035억원, 영업이익 7조9705억원이었다. 지난해 3분기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전망치를 하회한 것이다.
지난해 1년 전체로 볼 때 삼성전자는 연 매출 300조800억원으로, 2022년(302조2300억원)에 이어 역대 둘째로 많은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32조73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로서는 실적 반등을 위해 핵심 사업인 메모리에서 근본적인 기술력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재확인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5월 DS(반도체) 부문장으로 취임한 전영현 부회장 체제에서 메모리 부문 조직을 대폭 개편하며 재정비에 나섰다.
◇젠슨 황 “HBM 재설계 필요”…. 깊어가는 반도체 고민
이번 잠정 실적 발표에서 부문별 세부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3분기에 이어 4분기도 삼성전자 실적 악화의 주원인을 반도체라 본다. 이날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실적 하락에 대한 해설 자료를 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는 고용량 제품 판매 확대로 4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면서도 “비메모리 사업은 모바일 분야 등에서 수요가 부진했고, 가동률 하락과 미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실적이 하락했다”고 했다.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삼성 HBM이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핵심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BM에서 삼성전자의 기술력 부족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가전에서도 기대한 실적을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4분기는 갤럭시 스마트폰 신작이 나오지 않아 비수기로 꼽힌다. 가전도 글로벌 시장서 날로 성장하는 중국 브랜드와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
◇올 하반기 이후 반등 기대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는 하반기 이후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HBM·첨단 D램 등 메모리 기술력을 끌어올려 상반기 중 HBM의 엔비디아 납품에 성공하고,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2나노(10억분의 1)미터급 공정에 집중해 고객사 확보에 주력한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먼저 반도체 부문에서는 전영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전열 재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전 부회장은 지난 5월 취임 일성에서 “근원적 경쟁력 회복이라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기술과 기본을 강조하며 조직 재편에 나섰다. 취임 직후, 프로젝트성 개발 조직이었던 HBM 팀을 총괄 조직으로 격상시킨 ‘HBM 개발팀’을 새로 만들었다.
◇이달 말 출시 스마트폰 신작 ‘갤럭시 S25′에도 많은 기대
젠슨 황이 언급한 HBM 재설계와 관련해서도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올해 주력 제품에 탑재하기 위해 HBM3E 12단의 재설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공장 가동률을 낮춰 효율을 챙긴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 출시할 스마트폰 신작 ‘갤럭시 S25′에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갤럭시 S24에서 내장형 AI 기능을 처음으로 선보인 데 이어, 이번 신작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AI 신기능이 탑재될 예정이다. 또한 올해 중 두께가 얇은 ‘갤럭시 S25 슬림(가칭)’도 출시해 프리미엄 폰 라인업을 확대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에 미달하는 실적을 내놨지만, 주가는 오히려 큰 폭으로 상승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대비 3.43% 오른 5만7300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악재가 모두 드러난 만큼, 반등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되었다고 해석된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부진한 실적에도 ‘최악은 지났다’는 투자 논리로 저점 매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