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동일한 기술(2나노 공정)을 미국에 바로 도입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 대만 TSMC의 웨이저자 회장은 최근 실적 발표 자리에서 ‘2나노 공정 미국 진출 계획을 앞당길 것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비용과 인력 등의 문제로 미국에 최첨단 공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웨이저자 회장의 발언은 보조금을 앞세워 최첨단 공정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정책과 배치된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에 이어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상무부 장관을 맡은 하워드 러트닉은 이른바 ‘칩스법’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9일 보도했다. 미국이 최첨단 공정 도입을 강하게 압박한다면, 미국에서 반도체 투자를 진행 중인 TSMC·삼성전자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진출이 왜 어렵냐면
TSMC의 웨이저자 회장은 미국에서 최첨단 공정을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를 ‘인력 부족, 높은 비용, 규정 미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비용 문제다. 건설 기간 중 미국 내 인플레이션으로 건설 비용이 불어나면서 TSMC는 새 공장 건설에 기존 계획보다 3배 이상으로 늘어난 400억달러를 썼다. 애리조나 공장서 양산 준비를 위한 재료 공급 비용도 대만 공장 대비 5배에 달했다. 결국 공급망 다각화에 따른 비용 부담으로 TSMC는 올해 1분기 매출 총이익이 지난 분기(59%)보다 1%포인트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력 확보도 걸림돌이다. 대만 경제일보에 따르면, 웨이 회장은 애리조나 공장 건설 당시 일화를 들면서 “애리조나 현지인들은 생산라인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며 “결국 건설 노동자의 절반을 텍사스에서 데려와야 했다”고 했다. 이후 제조 장비를 설치하고 공장 가동을 준비할 전문 인력을 현지서 구하지 못해 대만 현지서 엔지니어 수백 명을 파견받아야 했다. 완공 후에도 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만에서 연구진과 엔지니어 파견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공장 운영은 미국 인력으로 채용하라”는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TSMC의 애리조나 1공장 전체 인력 2200명 중 절반은 대만 출신으로 채워졌다고 뉴욕타임스는 밝혔다.
미비한 행정 규정도 문제로 지목된다. 미국의 느린 행정 처리로 TSMC가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웨이 회장은 “반도체 공장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며 “미 정부는 ‘TSMC가 비용을 부담해 전문가를 고용한 뒤 필요한 규정을 먼저 만들고 승인받으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이에 TSMC는 약 3500만달러(약 507억원)를 들여 1만8000개 이상의 조항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또 기술 개발 상황에 따라 생산라인 설계를 즉각 변경할 수 있는 대만과 달리, 미국은 변동이 있을 때마다 매번 설계를 다시해 승인을 받아 일정이 늦어졌다고 한다.
삼성전자도 ‘투자 속도’ 조절
2026년부터 2나노 공정 가동
◇삼성도 똑같이 겪는다
TSMC가 미국 투자에서 직면한 문제는 국내 업체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미국 텍사스주 투자를 처음 발표하면서 예상 투자액을 170억달러라고 밝혔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 각종 비용 상승으로 총 투자액은 370억달러(약 53조6800억원)로 두 배 넘게 뛴 상태다.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첨단 파운드리 공장 두 곳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는 비용 문제뿐 아니라 업황 둔화와 고객사 수주 저조로 공장 완공 및 가동 시기를 늦춰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잠재 고객인 미국 빅테크사들을 겨냥해 2026년부터 최신 2나노 공정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창환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TSMC가 겪는 인력·비용적인 어려움에 고객 확보라는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삼성전자가 1990년대부터 텍사스 오스틴에 공장을 지으며 반도체 생태계가 어느 정도 완성이 돼 TSMC와 같은 인력 수급 문제에서는 조금 더 자유로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