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 서비스로 유명한 지역 생활 커뮤니티 기업 ‘당근’의 가입자가 3000만명에 육박하던 2022년 1월, 공동 창업자 김용현 대표가 갑자기 이민 가방 6개를 들고 가족과 캐나다 토론토로 떠났다. 출장·관광이 아닌 이민이었다. 그는 한국 경영은 공동 창업자에게 맡기고 “북미 시장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 대표가 배수진을 치고 캐나다로 떠난 배경에는 앞서 시도했던 영국과 일본 진출 실패가 있었다. 당근은 2019년 영국, 2021년 일본에서 중고 거래를 중심으로 서비스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의미한 성장을 이어가지 못했다. 현지에 서비스만 출시하고 한국에서 마케팅 등을 관리하다 보니 이용자가 왜 늘어나지 않는지, 현지에서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등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글로벌 진출에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란 가정 자체가 잘못됐던 것”이라고 했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성패 좌우
캐나다에서 직원 채용부터 마케팅과 서비스 현지화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현지에서 실감한 장벽은 한국과의 문화 차이였다. 대표적 예가 한국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매너 온도’다. 매너 온도는 중고 거래하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지표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수록 36.5℃에서 온도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매너 온도를 캐나다에도 똑같이 도입했지만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현지 이용자들은 매너 온도를 동네의 실제 ‘기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김 대표는 “북미에서는 스스로 체온을 재는 문화가 없어 매너 온도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점수 형태의 ‘캐롯 스코어’로 바꿨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 반경 최대 10㎞로 제한하던 당근 서비스의 동네 범위도 캐나다에선 20~50㎞로 확대했다. 캐나다 시장에 자리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지화에 나선 것이다.
캐나다에서 ‘캐롯(Karrot)’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중고 거래 서비스는 조금씩 소문을 타면서 지난달 누적 가입자 190만명을 돌파했다.
당근은 캐나다 문화에 맞춘 새로운 서비스도 만들어 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중고 거래를 위한 게시글을 대신 써주고 적당한 가격을 알려주는 ‘AI 포스팅’을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게시글 수가 크게 늘어나며 가입자도 늘고 있다. 또 캐롯의 현지 인지도를 키우기 위해 한국에서 근무하던 개발자 6명과 디자이너가 캐나다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를 기반으로 북미 시장에서 페이스북 등 타사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목표는 미국 진출
당근의 공동 창업자 김재현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지난해 6월 일본 법인 대표에 올라 한 달의 절반 이상을 일본에서 지내고 있다. 당근의 두 창업자(김용현·김재현)가 모두 글로벌 진출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현지 법인 이름도 각각 ‘캐롯 캐나다’, ‘캐롯 재팬’으로 일관성 있게 바꿨다. 김용현 대표는 “현지에 가보니 한국에 앉아서 글로벌 진출을 이야기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K드라마나 K팝처럼 당근이 K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성공 사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월간 활성 이용자(MAU) 100만명을 단기 목표로 세웠다. MAU 100만명을 돌파하면 이용자와 물건이 늘어나며 거래가 활성화되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글로벌 진출 목적지는 미국이다. 시범적으로 시카고와 뉴욕에 먼저 진출했다. 두 도시에서 실패를 반복하면서 일종의 ‘성공 가이드북’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투자의 결실을 얻기 위해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을 쏟아부을 작정이다. 그는 “국내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글로벌 진출에 투자하고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북미에서 성공하면 다른 국가로 진출하는 것은 그만큼 더 쉬워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한창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에 글로벌 진출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김용현 대표는 “국내 시장이 작기 때문에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 무리한 사업 다각화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