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왼쪽) 오픈AI 최고경영자와 손정의(오른쪽)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은 4일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인공지능(AI)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올트먼 CEO와 손 회장은 이날 취재진에 한국과의 협업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이 회장의 사진은 작년 7월 해외 방문 후 귀국길 모습이다. 테크 업계에선 세 사람의 이번 만남이 ‘한·미·일 AI 동맹 구축’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뉴스1·뉴시스·박성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4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만나 인공지능(AI)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과 올트먼은 약 730조원을 투입해 미국에 초거대 인공지능(AI) 인프라를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 후 손 회장은 취재진을 만나 “스타게이트의 진행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며 “우리는 매우 좋은 논의를 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Midjourney

테크 업계에선 이번 만남에 대해 ‘한·미·일 AI 동맹 구축’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AI 분야에서 확실한 역할 분담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말 챗GPT를 선보인 오픈AI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AI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손정의 회장은 약 200조원 규모의 비전펀드를 운영하며 첨단 기술에 투자하는 글로벌 테크 업계의 큰손이다. 특히 소유하고 있는 영국 기업 ‘ARM’은 반도체 설계 분야 최고 기업이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별도 조직도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사업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 메모리 생산 업체이며 AI 칩을 만들 수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도 갖고 있다. AI 모델을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 가전, TV를 생산한다. AI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는 삼성전자로선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를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는 “이 세 기업이 제대로 협업한다면 ‘새로운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중국의 ‘딥시크 쇼크’ 이후 AI 산업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서로의 협력이 절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삼성을 파트너로… 韓美日, 새로운 AI 생태계 만든다

4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이뤄진 이재용 회장, 손정의 회장, 샘 올트먼 CEO의 삼자 회동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당초에는 샘 올트먼 오픈AI와 전영현 부회장 등 삼성전자 고위 경영진 간의 면담으로 예정된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전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참석을 결정했다. 그러자 일본에 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4일 오전 급히 서울로 건너오면서 3자 회동이 성사됐다. 손 회장과 올트먼은 바로 전날 도쿄에서 만나 합작사 설립 등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었다.

1시간 30분간 이어진 면담 후 손 회장은 “AI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매우 좋은 논의를 했다”며 “삼성전자는 훌륭한 파트너이고,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만남에 대해 별도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한·미·일 AI 동맹 결성

이날 3자 회담의 주요 주제는 미국에서 진행될 초거대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4년 동안 약 730조원(5000억 달러)을 투자해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등을 짓는 것이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이 주도한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 이튿날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할 정도로 미국이 공을 들이는 사업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한·미·일 AI 동맹’이 결성되는 것이다.

AI 산업을 위해선 AI 모델과 이를 움직이는 AI 반도체, 그리고 이를 운영하기 위한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막대한 투자금이 필수적이다. 세 기업은 이 분야에서 확실한 자기 역할을 가지고 있다. 오픈AI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선 AI 모델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출시한 ‘o1(오원)’은 스스로 추론을 하며 인간 수준의 범용 인공지능(AGI)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딥시크가 저비용·고효율의 AI 모델을 내놓으면서, 오픈AI로서는 확실한 기술적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소프트뱅크는 200조원 규모의 ‘비전 펀드’를 운영하며 신기술에 투자했지만, AI에선 상대적으로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오픈AI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따라잡기에 나섰다. 특히 비전 펀드가 소유한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은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맞춤형 AI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다. 이번 3자 회담에는 르네하스 ARM CEO도 배석했다. ARM은 지난해 5월 AI 칩을 전담할 별도 조직을 구성했으며, 손 회장은 이와 별도로 초고성능 AI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1000억달러(약 146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프로젝트 이자나기’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CPU(중앙 처리 장치) 등의 반도체를 생산한다. ARM이 설계한 AI 반도체를 생산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도 갖고 있다. 최근 이 분야에서 경쟁사보다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기술력을 회복한다면 새로운 AI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AI 모델을 소비자들이 사용하게 될 스마트폰과 가전제품도 직접 생산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스마트폰에는 구글의 AI 모델이 사용되고 있지만, 오픈AI 모델을 탑재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전자, AI 생태계 진입 기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번 3자 회동이 새로운 AI 생태계에 진입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을 납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엔비디아 이외 다른 거래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가 직접 스타게이트에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현재 AI 생태계는 엔비디아와 TSMC가 주도하고 있는데, 세 기업이 힘을 합치면 또 다른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며 “특히 엔비디아의 높은 독점력에서 벗어나려는 빅테크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새로운 AI 생태계에 대한 수요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손 회장은 TSMC를 선호하지만, 기술 지원 및 제조 규모를 맞추기 위해 다른 파트너를 찾을 수도 있다”고 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오픈AI·소프트뱅크·오러클 주도로 인공지능(AI) 합작회사 ‘스타게이트’를 세우고, 향후 4년간 최대 5000억달러(약 730조원)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이다. 미국의 AI 패권 강화를 위해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