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 전 세계 가전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 파나소닉이 70여 년 만에 TV 사업에서 철수할 전망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에 밀리고, 공고할 것 같던 일본 TV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 점유율이 50%를 넘어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홀딩스의 구스미 유키 사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TV와 산업용 기기 등을 지목하며 “수익이 적고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철수하거나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블룸버그 등은 “파나소닉홀딩스가 TV 사업을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파나소닉은 전신인 마쓰시타전기 시절인 1952년 TV 판매를 시작했다. 파나소닉은 1970~80년대 나쇼날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해, 국내에서도 나쇼날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파나소닉이 TV 사업을 철수하거나 외국 기업에 매각할 경우 일본 기업의 TV는 소니만 남는다. 일본 TV 산업의 몰락은 신흥 강자의 부상에 신기술 대신 가격 경쟁이나 마케팅으로 대응하다 쇠퇴한 ‘실패 사례’를 보여준다.

그래픽=박상훈

◇가격·기술 밀린 TV의 몰락

일본 TV의 경쟁력은 1970~80년대 정점을 찍었다. TV의 황금기였던 당시 일본은 미국 전자 부품 시장의 70~80%를 점유했다. 미국 브랜드라도 일본 부품이 없으면 TV 제작은 불가능했다. 파나소닉,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자체 브랜드의 위상 역시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년 전 브라운관 TV에서 LCD TV로 흐름이 넘어가면서 일본 TV는 급격히 몰락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LCD TV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는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올레드(OLED) TV가 대중화하면서 기술 격차는 더 벌어졌다. 옴디아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전 세계 TV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17.9%), 2위는 TCL(14.3%), 3위 LG전자(11.1%), 4위 하이센스(10.8%) 순이다. 소니는 2.5%, 파나소닉은 1.0%에 불과하다.

일본 기업의 TV 사업도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 2016년 샤프는 대만 폭스콘에 인수됐고, 2017년엔 일본 내수 TV 1위였던 도시바 TV 사업을 중국 하이센스가 인수했다.

공고할 것만 같았던 일본 내수 시장도 중국산 TV에 자리를 넘겼다. 작년 처음으로 중국 업체들의 일본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선 것. 시장조사 업체 BCN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일본 내 TV 시장 점유율은 하이센스(자체 브랜드와 레그자 합산)가 41.1%로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TCL도 9.7%로 소니(9.6%)와 파나소닉(8.8%)을 제치고 3위에 올라섰다. BCN리서치 수석 분석가 모리 에이지는 “최근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일본인들의 저축 의식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브랜드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도한 가격 할인, 경쟁력 하락 악순환”

2000년대 한국산 TV, 2010년대 중국산 TV에 대응한 일본 기업들의 전략은 가격 정책이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은 한 번에 30%씩 가격을 내리며 삼성전자·LG전자의 부상에 대응했다. 손해를 보고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영향으로 소니 등은 2000년대 초반 TV 부문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기도 했다. 2006년엔 글로벌 TV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소니를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최근 중국 TV에 대한 대응 전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배은준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TV는 대규모 할인 정책을 펼치며 중국 TV에 대응했다”며 “하지만 대규모 할인 정책은 기존 제품과 기능과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모델 개발로 이어져 경쟁력이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라고 밝혔다.

TV 사업을 다시 일으켜 보려는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다. 파나소닉과 소니는 2015년 올레드(OLED) 사업 부문을 합병해 JOLED를 출범시켰다. 올레드 TV로 프리미엄 TV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기존 올레드 제조사들이 양산에 활용한 기법이 아닌 독특한 기술로 생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기술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수율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양산에 실패했고, JOLED는 2023년 파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