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국내 인터넷 기업 중 최초로 연 매출 10조원을 돌파했다. 삼성의 1호 사내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1999년 독립한 지 25년 만이다. 네이버는 작년 연간 매출액 10조7377억원, 영업이익 1조9793억원을 기록했다고 7일 밝혔다. 전년 대비 각각 11.0%, 32.9% 늘어난 규모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서치 플랫폼(포털 검색·광고)과 커머스(전자 상거래), 핀테크(결제 서비스), 클라우드(기업용 소프트웨어) 등 대부분의 사업에서 고루 성장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이날 실적 발표 후 가진 콘퍼런스콜(실적 설명회)에서 “광고와 커머스 시장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있어 올해는 전년 대비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가치와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국내 플랫폼 시장을 개척한 벤처 1세대에 속한다. 2000년대 초반 야후와 라이코스 같은 미국 기업들이 한국 검색 시장을 장악하던 시기에 사용자가 질문에 직접 답을 올리는 ‘지식인(iN)’ 서비스를 도입하며 국내 검색 시장의 최강자가 됐다. 중국·일본을 제외하고 유럽 등 대부분의 지역이 미국 빅테크의 플랫폼에 장악됐지만, 한국은 네이버·다음 때문에 독자적인 플랫폼 생태계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AI로 인해 플랫폼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네이버는 작년 역대 최대 실적에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내달 주총에서 이해진 창업자가 7년 만에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전년과 달라진 성장 공식
네이버 실적은 핵심 사업인 서치 플랫폼(포털 검색·광고 사업) 부문이 이끌었다. 전체 사업에서 매출 비율이 36.8%로 가장 크다. 재작년 이 부문의 매출 성장률은 전년 대비 0.6%에 그쳤으나, 작년에는 9.9% 성장하며 매출 3571억원을 더했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개인 맞춤형 사용자 검색 화면(UI) 개편과 공공기관 등 공신력 있는 데이터의 색인 문서를 지속 확대하면서 관련 노출과 클릭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의 또 다른 주력 사업인 커머스 부문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14.8% 늘어난 2조9230억원을 기록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특히 네이버는 지난 10월 상품 탐색에 특화된 AI 기술을 접목한 새 쇼핑 서비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를 출시했고, 11월에는 멤버십 가입 시 넷플릭스를 무료 시청할 수 있게 제휴를 맺는 등 상거래 사업 강화를 위한 각종 전략을 내놨다. 올 상반기에는 새벽 배송과 당일 배송 도입까지 예고하며 “전자 상거래 1위인 쿠팡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 대표는 “넷플릭스와의 제휴로 일평균 신규 가입자 수가 기존 대비 1.5배 증가했다”며 “이렇게 유입된 신규 가입자의 네이버 쇼핑 내 지출은 가입 전 대비 30%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AI 시대 한계 봉착한 네이버
네이버는 탄탄한 포털 사업을 기반으로 쇼핑과 웹툰, 결제 등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며 성장성을 유지했다. 다만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실적과 달리 네이버 주가는 전 고점(2021년 7월) 대비 반 토막 수준인 22만원대를 기록 중이다. 매출 성장세는 주춤하고, AI 시대 대응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 네이버의 국내 검색 포털 시장 점유율은 2015년 80%에서 떨어지기 시작해 현재는 60%대를 기록 중이다.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 역시 10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심지어 커머스와 함께 네이버 성장의 ‘두 날개’ 역할을 했던 콘텐츠 사업 부문도 경쟁력이 우려된다. 네이버웹툰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사업 매출은 재작년만 해도 전년 대비 37.4% 성장했지만, 작년 매출 성장률은 3.7%에 그쳤다. 국내 웹툰 시장이 이미 포화된 상태에서 해외 사업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네이버 웹툰(웹툰 엔터테인먼트)은 지난해 미국 상장에 성공했으나, 주가는 상장 당시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자의 이사회 의장 복귀와 함께 AI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계획이다. 2023년 공개한 초거대 AI 언어 모델 ‘하이퍼클로바X’는 성능 면에서 오픈AI의 ‘챗GPT’나 구글 ‘제미나이’ 같은 빅테크의 AI 모델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저비용 고성능 모델과 비교되고 있다. 최 대표는 “딥시크 출현은 후발 주자가 선도 업체를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투자라도 추격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줬다”며 “선도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벌어지지 않게 멀티 모델이나 추론 능력 등 강화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