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기업 가치가 최대 3000억달러(약 437조원)로 평가받았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역대 최대인 400억달러(약 58조원)의 투자를 받기로 하면서 기업 가치가 크게 뛰었다. 창업 10년밖에 안 된 비상장 기업이지만, 생성형 AI인 챗GPT의 글로벌 흥행, 중국에 맞서 미국 AI 산업을 이끈다는 시장 기대감이 커지면서 삼성전자(약 321조원·7일 기준)와 SK하이닉스(약 148조원)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과 맞먹는 몸값을 갖게 된 것이다.

7일(현지 시각) 미 CNBC 등에 따르면, 오픈AI는 이번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 3000억달러로 평가됐다. 지난 10월(1570억달러) 이후 4개월 만에 배 가까이로 오른 것이다. ‘천재 개발자’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 공동 창업자가 작년 6월 설립한 AI 스타트업 SSI는 기업 가치가 200억달러(약 29조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은 중국 ‘딥시크 충격’ 이후 업계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폭발적으로 증가한 영향이 크다. 오픈AI·MS·구글·아마존 등이 최근 100조원 안팎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AI 산업 생태계가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더 공격적인 투자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딥시크 돌풍이 AI 투자를 부추겼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진영

◇빅4, AI 투자 40% 확대… ‘딥시크 쇼크’에 되레 돈 더 부어

오픈AI는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총 400억달러(약 58조원)를 조달하는 투자 협상을 곧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투자금은 민간 자금 조달 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투자가 성사될 경우 소프트뱅크는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오픈AI의 최대 투자자가 된다. MS는 2019년부터 오픈AI에 140억달러를 투자했다.

오픈AI는 3000억달러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창업 10년 만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민간 우주개발 업체 스페이스X(기업 가치 3500억달러)에 이어 틱톡의 모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3000억달러)와 함께 세계에서 둘째로 가치가 높은 스타트업이 됐다.

오픈AI는 투자 금액 대부분을 미국 전역에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짓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가성비 AI’에 집중하는 중국과 달리 인간 지능 수준을 갖춘 범용 인공지능(AGI)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기 위해 첨단 인프라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AI 산업에 투자금이 몰리면서 주요 AI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는 최근 1~2년 사이 2~4배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는 “차세대 AI 기술 개발을 위한 거대 투자가 이뤄지는 한편 딥시크처럼 저가 AI 개발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딥시크 충격이 AI 산업 지형도를 크게 바꾸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거액 투자 몰리는 AI 기업들

AI 산업의 ‘투자 러시’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AI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은 최근 새로운 투자 유치를 하면서 기존보다 배로 많은 280억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두릴은 정찰용 드론, 미사일 등 군사용 자율 주행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다. 이번 투자 유치에서 안두릴은 최대 25억달러를 모금할 예정이다.

오픈AI의 최고과학자 출신인 일리야 수츠케버가 AI 안전을 위해 설립한 스타트업 SSI(세이프 수퍼 인텔리전스)에도 투자금이 쏠리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200억달러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세쿼이아 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 등 투자자로부터 10억달러를 조달하면서 50억달러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는데 5개월 만에 기업 가치가 4배가 된 것이다. AI 방산 소프트웨어 기업인 팔란티어는 지난 6일 주가가 9.8% 오르며 시가총액이 2534억달러(약 369조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시총(321조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방산 분야에 특화된 AI 스타트업 실드AI도 지난달 에어버스 등에서 2억달러 투자를 받으며 기업 가치가 1년 만에 배로 오른 50억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픽=이진영

◇아마존·구글 등 빅4, AI 투자 40% 확대

AI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배경에는 쏟아지는 글로벌 투자가 있다. 딥시크 쇼크 이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AI 투자를 늘려 가고 있다. 딥시크가 미국 업체의 10분의 1 수준의 비용으로 고성능 생성형 AI를 개발하자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 없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AI 기술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더 커지면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타, 알파벳(구글 모기업), MS, 아마존 등 빅4 테크 기업이 AI 분야를 중심으로 올해 총 3200억달러(약 466조원) 규모를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해 이들 기업의 자본 지출액인 2300억달러보다 40% 늘어난 수치다.

그래픽=백형선

이들 빅4 중 가장 많은 투자를 예고한 기업은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올해에만 1000억달러 이상을 지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830억달러보다 20% 늘었다. MS는 지난달 29일 실적 발표에서 “올해 800억달러를 AI 데이터 센터 구축에 할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파벳은 750억달러, 메타는 600억~650억달러를 쓴다는 계획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딥시크의 사례가 기존 AI 모델을 값싸게 복제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AI 성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려운 사업 모델”이라며 “AGI를 비롯해 차세대 AI 개발을 위해선 방대한 데이터와 막대한 컴퓨팅 인프라를 위한 대규모 투자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