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AI 규제 단순화할 것"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한 'AI(인공지능) 정상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AI 규제를 단순화할 것"이라며 "다시 AI 경주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우리는 AI 규제를 단순화할 것이다. 유럽은 세계 다른 나라들과 다시 보조를 맞춰야만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AI 정상 회의’에서 “프랑스는 다시 AI 경주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CNN 인터뷰에서 그는 “일부 미친 규제를 없애고, 이를 둘러싼 환경을 단순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불과 2년 전 영국에서 열린 첫 AI 정상 회의에서 28국이 모여 ‘AI가 인류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규제 방안에 머리를 맞댄 것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에는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 등장 후 AI에 대한 두려움이 세계를 지배했다. ‘AI가 핵폭탄보다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초거대 AI 연구를 6개월 동안 중단하자’는 파격적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의 725조원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발표, 중국의 저비용 고성능 AI 딥시크 쇼크가 더해지자 AI 규제에 앞장서던 유럽조차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AI 종말론자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했다.

◇‘AI 규제 완화’ 목소리

AI를 둘러싼 유럽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영원히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2000년대 전후 산업 패러다임이 인터넷·모바일로 전환할 때 기회를 놓친 유럽은 산업 경쟁력이 급격히 쇠락했다.

그래픽=김성규

유럽 국가 중 AI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프랑스다. 자국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이 오픈AI, 구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마크롱은 “유럽은 AI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며 “미국, 중국과 격차를 좁히기 위한 AI 어젠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해외 투자를 포함해 향후 수년간 1090억유로(약 163조원)의 민간 투자를 받는 ‘유럽판 스타게이트’ 구상을 내놨다. 여기에는 캐나다 투자회사 브룩필드의 200억유로 규모 AI 투자와 함께 1GW(기가와트) 규모의 컴퓨팅 용량을 갖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 등이 포함돼 있다. 프랑스는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한 대규모 원전 건설도 검토 중이다.

EU 집행위원인 헤나 비르쿠넨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중복 규제가 너무 많고, 산업계를 위해 번거로운 절차와 행정적 부담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유럽은 AI 규제의 기반이 되는 ‘AI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승인했지만, 기업과 회원국들이 이 법의 규제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요구해 법의 구체적 지침을 담은 ‘실천 규범’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빅테크들도 유럽의 AI 규제 완화에 목소리를 높였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정상 회의에 앞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를 통해 “AI 규제법 시행을 위해 노력하는 유럽 규제 당국은 남들이 전진하는 상황에 자신들의 결정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의에 참석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유럽의 생산성은 이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유럽의 경쟁력은 생산성에 달렸다”고 했다.

◇군사용 AI에 뛰어드는 기업들

‘AI 규제’에 대한 분위기가 바뀌면서 주요 AI 기업들은 앞다퉈 군사용 AI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빅테크들은 ‘AI가 인류를 위협할’ 우려 때문에 AI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AI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며 국가 안보를 위해 국방 분야에도 AI를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고, AI 기업들도 스스로 고삐를 풀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1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은 독일 국방 AI 기업인 헬싱과 파트너십을 맺고, 군사용 AI 시스템 개발팀을 출범시켰다. 양 사의 AI 기술을 활용해 전장에서 군인과 AI 간의 협업을 개선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구글은 지난 4일 자사 AI 윤리 지침을 변경하면서 ‘AI를 무기나 감시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지금까진 AI를 군사에 사용하는 것을 윤리적 이유로 막아왔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AI 규제론이 약화된 데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미 싱크탱크 ‘센터 포 아메리칸 프로그레스’의 알론드라 넬슨 수석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AI 경쟁이라는) 정치적 동기에 따른 AI 규제 폐지는 위험하고 자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정상 회의

인공지능(AI) 개발 방향과 안전한 활용을 논의하기 위해 각국 정상과 학계, 글로벌 기업이 모이는 국제회의. 고도화된 AI가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AI 규제와 국제 협력을 위해 만들어졌다. 2023년 11월 영국에서 첫 회의가 열렸고, 2024년 서울, 2025년 파리에서 회의가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