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의 상징인 알리바바가 20일 콘퍼런스 콜(투자자 설명회)에서 “앞으로 3년 동안 인공지능(AI) 분야에 지난 10년간 총투자액(약 220조원) 이상을 공격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투자 발표는 지난 17일 베이징에서 열린 민영기업 심포지엄에서 창업자 마윈이 시진핑 주석과 만난 직후 나왔다. 시 주석이 딥시크·화웨이·텐센트 등 자국 핵심 테크 기업 인사들을 불러 모아 사실상 ‘AI 총동원령’을 선언한 자리였다.
마윈은 2020년 중국 당국의 규제를 공개 비판한 뒤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해왔다. 이번에 공식 석상에서 시 주석과 악수하며 ‘공식 복권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화답한 것이다.
알리바바그룹의 토비 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AI 시대가 가져온 기회를 잡기 위해 단기간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했다. 이 회사의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총투자액은 약 1조1189억위안(약 220조원). 마윈은 그보다 많은 돈을 향후 3년간 AI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메타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주요 빅테크의 AI 투자 규모와 맞먹는다.
알리바바뿐 아니라 중국 빅테크들은 중국 정부를 중심으로 AI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틱톡 모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는 올해 AI 분야에 17조원 이상 투자할 계획이다. 작년 상반기에만 4조5000억원을 AI 인프라 구축에 쓴 텐센트 역시 올해는 그 이상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테크 업계에선 “AI 패권을 위한 미국과 중국의 ‘쩐의 전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시진핑 ‘AI 총동원령’에… 中 빅테크들 6년간 2000조 퍼붓는다
지난 17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베이징으로 중국의 대표 테크 기업을 불러 모은 것은 큰 상징성을 갖는다. 2020년 이후 시 주석은 중국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테크 기업을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며 압박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분야 등에서 미국과의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테크 기업에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달 중국 딥시크가 저비용·고성능 AI 모델을 선보이며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자, 알리바바·화웨이·샤오미 등 대표 기업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마윈을 앉혀 테크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은 회의를 할 때 주도면밀하게 참석자, 자리 배치, 발언자까지 계획한다”며 “참석한 17개 기업 중 발언을 한 기업은 대부분 테크 기업이었는데, AI와 로봇 등 최첨단 미래 분야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펼치겠다는 방향을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딥시크의 량원펑 CEO는 중국 인터넷 업계 양대 거물 중 한 곳인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 바로 옆자리에 앉아 존재감을 드러냈다.
◇“中 2030년까지 1900조원 투자”
최근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중앙 정부와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AI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지난달 저비용·고성능 AI 모델로 전 세계 테크 업계에 충격을 준 딥시크는 처음으로 외부 자금 유치에 나섰다.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와 전국사회보장기금이 투자를 제안했고, 알리바바 역시 투자를 논의 중이다.
다른 기업들도 AI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틱톡의 모기업 바이트댄스는 올해 AI 사업에 120억달러(약 17조20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내 AI 칩 확보에 55억달러, AI 모델 훈련에 68억달러를 쓴다는 계획이다.
작년 상반기에만 AI 설비에 4조5000억원을 투자한 텐센트도 올해 투자 규모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 차세대 AI 모델 출시를 선언한 바이두도 대규모 AI 투자를 암시했다. 바이두 CEO 로빈 리는 지난달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혁신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며 “기술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을 때는 투자를 멈출 수 없다”고 밝혔다.
향후 6년간 2000조원에 가까운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의 첸리앙 회장은 최근 열린 포럼에서 “중국 AI 산업은 앞으로 6년 동안 10조위안(약 1976조원) 이상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며 “2030년까지 중국 AI 시장 규모는 5조6000억위안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남아·러시아로 AI 영토 확장
해외 시장 공략은 중국 테크 기업들이 담당하고 있다. 중국은 딥시크 등 자국산 AI 모델이 미국의 비싼 AI 모델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란 점을 강조하며 개발도상국 등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자체 AI 개발에서 중국에 밀린 인도는 값싼 딥시크 AI에 시장을 열기로 했다. 미국 기술을 쓰기 어려운 러시아도 중국 AI를 기반으로 모델 개발에 나섰다.
작년 11월 인도네시아는 중국 주요 기업들과 100억달러(약 14조원) 규모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텐센트는 인도네시아의 클라우드 인프라 강화를 위해 2030년까지 5억달러를 투자하고, 현지 기업들에 AI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 데이터센터 3곳을 운영 중인 알리바바는 현지 대학에 기술 교육센터를 설립해 AI 인재 양성을 지원한다. 바이트댄스는 작년 6월 말레이시아에 AI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100억링깃(약 3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올해 1월 중국 4대 국유은행 중 한 곳인 ‘중국은행’은 향후 5년간 AI 산업계에 1조위안(약 197조원) 이상 금융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은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AI 선도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