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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집 안 곳곳을 다니며 무선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고, 빨래를 정리한다. 사람처럼 요리사 옷을 입고 고기를 굽는 등 요리도 척척 한다. 로봇이 일하는 동안 사람들은 집안일은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음악을 감상하거나 명상을 하고 있다. 2000년 개봉한 SF(공상과학)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의 한 장면 같지만 이는 노르웨이 로봇 기업 1X가 최근 개발한 AI 휴머노이드 ‘네오 감마’가 실제 가정에서 작동하는 모습이다. 오픈AI에서 초기 투자를 받은 것으로 잘 알려진 이 업체는 로봇이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을 하는 데 성공하면서 AI(인공지능) 로봇 상용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르웨이 1X는 SF(공상과학) 영화처럼 모든 가사를 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1X 제공

AI 업계가 휴머노이드로 대표되는 ‘피지컬 AI’ 개발을 가속하고 있다. 피지컬AI는 로봇·자율주행차처럼 물리적(physical) 형태를 가진 AI 기술을 말한다. 컴퓨터가 사람 말을 있는 그대로 알아듣는 생성형 AI의 발달, 주변 사물을 빠르게 인식하는 비전 기술이 더해지면서 AI는 궁극의 목표인 피지컬 AI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AI 기술과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휴머노이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오는 2030년 380억달러(약 54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그래픽=김성규

◇사람 말 알아듣고, 로봇끼리 협력

휴머노이드는 최근 첨단 AI 기술을 만나 ‘퀀텀 점프’ 하듯 기술 수준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사람이 입력한 프로그램에 따라 단순 동작만 반복하던 것을 넘어 주변 공간을 인식하고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최근엔 사람 개입 없이 로봇끼리 협업하는 기술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피겨AI는 지난 20일 자사 유튜브에 로봇용 AI 모델인 ‘헬릭스(Helix)’를 적용한 로봇이 작동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가장 큰 특징은 휴머노이드 로봇 ‘피겨02’ 두 대가 사람 개입 없이 협업한다는 점이다. 이 로봇들은 부엌에 나란히 서서 물건을 정리한다. 한 로봇이 치즈를 집어 냉장고에 가까이 서 있는 로봇에 물건을 건네면 냉장고 안에 넣는 식이다.

미국 피겨AI는 사람 없이 로봇끼리 협업해 작업을 마치는 기술을 선보였다 /피겨AI 제공

이 업체는 사람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AI 로봇 기술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23년 공개한 ‘피겨 01′은 사람이 ‘먹을 걸 줘’라고 말하면 여러 물체가 놓인 테이블 위에서 사과를 정확히 골라 사람에게 건네준다.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를 탑재해 사람이 쓰는 자연어를 100% 알아듣고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생성형 AI는 로봇이 사람 언어를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학습 속도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과거엔 사람이 로봇에 일일이 특정 행동에 대한 명령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입력해야 했다. 예를 들어, ‘2층에 가서 노트북이 든 가방을 가져와’라는 명령을 수행하려면 계단 하나당 높이와 재질, 가방의 구체적 형태·색상, 물체를 손으로 집는 방법 등을 하나씩 알려주는 식이다. 반면 AI 로봇은 거대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주변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생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별도 코딩 과정이 필요 없다. AI 기술의 발전이 로봇 개발의 패러다임도 180도 바꿔 놓은 것이다.

현대차 산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사람 지시를 알아듣고 움직이는 산업 현장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제공

◇휴머노이드에 투자하는 빅테크

지난 3~4년간 생성형AI 기술에 천문학적 투자를 쏟아부었던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제 이를 기반으로 피지컬AI의 핵심인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구글은 최근 미국의 로봇 스타트업 ‘앱트로닉’에 투자했다. 총 3억5000만달러 규모의 투자에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앱트로닉은 높이 170㎝, 무게 73㎏의 산업용 로봇 ‘아폴로’를 메르세데스-벤츠의 공장에 투입해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구글은 자사 AI를 기반으로 한 로봇용 소프트웨어를 앱트로닉의 로봇에 적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은 2010년대 초반 여러 로봇 기업을 인수했지만 AI 기술 부족으로 관련 프로젝트가 무산된 바 있다. 최근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다시 로봇 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메타(페이스북 모기업)는 최근 가상현실(VR) 등 메타버스 사업을 추진하는 리얼리티랩스 내부에 로봇 개발팀을 신설했다. 메타의 AI 모델 라마(Llama)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소비자용 휴머노이드 연구·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삼성·LG 등 국내 대기업들도 로봇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카이스트 휴보랩 연구진이 설립한 로봇 스타트업 레인보우 로보틱스의 최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국내 최초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업체를 자회사로 편입해 본격적인 휴머노이드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LG전자도 지난달 상업용 자율주행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의 경영권을 확보하며 로봇 사업 확대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