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이 주력 사업을 바꾸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자본뿐 아니라 새 기술을 개발하고 또 다른 시장에서 성공하는 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 온라인 숙박·여행 예약 플랫폼을 운영하는 ‘야놀자’는 그런 혁신의 성공을 보여주는 업체로 최근 스타트업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야놀자 사옥 휴게 공간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이준영(54) 야놀자 클라우드 공동 대표 겸 야놀자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그네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야놀자는 원래 소비자와 숙박업체를 중개해주던 예약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21년 야놀자 클라우드 법인을 신설한 뒤 기업을 고객으로 한 클라우드(원격 가상 서버) 기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사스)’ 개발·판매에 집중하며 변신을 꾀했다. ‘사스’는 매달 일정액의 구독료를 내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 결과, 작년 1~3분기 야놀자 전체 누적 매출에서 기업용 기술 판매 사업(클라우드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30%를 넘었다. 3년 전(2021년 8.6%)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야놀자 사옥에서 만난 이준영(54) 야놀자 클라우드 공동대표 겸 야놀자그룹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야놀자의 이런 숨 가쁜 변화를 주도해 온 인물이다. 구글 미국 본사에서 검색엔진 개발 총괄(디렉터)까지 지낸 그는 지난 2022년 야놀자에 합류했다. 이 대표는 “구글에서 첫 한국인 직원으로 시작해 19년을 일했는데, 데이터야말로 미래를 바꾸는 힘이라고 느꼈다”면서 “막대한 데이터를 가진 야놀자에서 그런 구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모텔 앱 넘어 사스 기업 된 야놀자

이 대표는 구글에서 일할 당시만 해도 야놀자란 기업을 몰랐다고 했다. 그 덕분에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그는 “요즘 기술 산업에서 데이터는 가장 큰 개발 동력”이라며 “그런데 야놀자는 일반 고객(B2C)과 숙박·여행업체(B2B)를 동시에 상대하며 여행·숙박·레저에 특화된 다양한 데이터를 쌓고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었다”고 했다. B2C와 B2B 사업을 동시에 하면서 쌓아온 데이터를 연결하기까지 하는 곳은 해외에서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 야놀자는 숙소 예약을 중개하며 쌓아온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온라인 객실 예약 관리와 체크인·아웃, 객실 청소 상태 확인 등을 지원하는 ‘호텔 운영 관리 시스템(PMS)’을 개발했다. 항공사·호텔·렌터카 같은 여행 사업자와 아고다·트립닷컴 같은 온라인 여행 상품 판매 채널을 연결해주는 중개 소프트웨어 판매도 글로벌로 확대했다. 이젠 206국 133만여 호텔 및 여행 사업자가 야놀자의 고객이다. 라마다 호텔 같은 중저가 글로벌 호텔 체인을 포섭한 덕분에 PMS 분야에선 미국 오러클에 이은 세계 2위 사업자다. 이 대표는 “해외 호텔에선 여전히 예약 명부를 수기나 엑셀로 관리하는 등 디지털 전환이 덜 된 경우가 여전히 많다”며 “야놀자 기술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훨씬 크다”고 했다.

◇구글·오픈AI와도 손잡아

이 대표는 야놀자에서 기업 고객을 위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로 AI 기반의 숙박 업체용 가격 최적화 소프트웨어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있다. AI가 주변 시설 시세부터 성수기와 행사 개최 여부 등 다양한 지표와 패턴을 수집·학습해 공실률을 낮추는 최적의 가격을 찾아준다. 이 대표는 “공실률 낮추기는 고객(숙박 업체)들의 최대 과제인데, 호텔 같은 곳에선 이 업무만 맡는 베테랑 직원이 있어 하루 4시간씩 가격을 조정한다”면서 “AI는 그런 베테랑 직원보다 마진율을 3% 정도 끌어올렸고, 24시간 자동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업계에 충격을 줬다”고 했다.

야놀자는 AI 기반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빅테크와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 지난달 구글 클라우드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해외여행에 특화된 AI 서비스 개발에 나섰고, 오픈AI와도 손잡고 오픈AI의 AI 에이전트 ‘오퍼레이터’에 야놀자 숙소·여행 예약 서비스를 연동했다. 이 대표는 “생성형 AI 등장으로 각 산업에 특화된 전문 AI 개발이 중요해졌다”며 “야놀자가 쌓아온 여가 산업 특화 데이터는 이런 AI를 개발하는 데 최고의 무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