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국내에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몰아쳤다. 1000여 개였던 전국 PC방 수는 스타크래프트 출시 1년 만에 10배 이상 불어났고, 수십 개의 게임 대회가 열리며 지금의 e스포츠 문화의 기반을 닦았다. 당시 청소년 희망 직업 1위에 프로게이머가 오를 정도였다. 스타크래프트는 ‘디아블로’와 ‘워크래프트’ 등으로 유명한 미국 게임사 블리자드(Blizzard)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PC 게임이다. 국내 판매량이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덕분에 블리자드는 2004년 처음으로 한국에 해외 지사를 설립하며 글로벌 게임사로 오르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조해나 패리스 블리자드 사장은 블리자드코리아 20주년을 맞아 최근 한국을 방문해 기자와 만나 “한국은 블리자드의 ‘레거시(유산)’에서뿐만 아니라 사업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국가”라며 “앞으로 한국의 이용자 커뮤니티는 물론 한국만의 콘텐츠 개발을 위해 집중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취임한 조해나 사장은 미국프로풋볼리그(NFL)에서 클럽 비즈니스 개발 부사장을 지내고 글로벌 게임 브랜드 ‘콜 오브 듀티’의 총괄 매니저를 역임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문가다.
블리자드가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한국이 e스포츠를 비롯한 게임 문화를 주도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조해나 사장은 “한국 이용자들은 ‘경쟁’을 굉장히 좋아한다”면서 “이러한 문화 때문에 e스포츠가 한국에서 태동한 것”이라고 했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게임을 e스포츠와 접목해 이용자를 끌어 모으고 관련 커뮤니티를 만들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블리자드의 슈팅 게임 오버워치2의 e스포츠 대회 ‘오버워치 챔피언스 시리즈 코리아’ 현장 관람 표가 전석 매진되는 등 이러한 전략은 효과를 보고 있다.
블리자드는 한국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2년 전 ‘블리자드코리아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블리자드 본사 개발팀의 일부인 이 스튜디오는 한국과 관련된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현지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조해나 사장은 “지난 몇 년간 인력 등 리소스 면에서 한국 스튜디오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 시장만을 위한 콘텐츠 개발을 위해 개발진과 콘텐츠 개발에 계속해서 투자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블리자드의 월터 콩 오버워치 총괄 매니저는 조해나 사장과 함께 한국에 방문해 블리자드코리아 스튜디오와 함께 직접 오버워치2 시즌 15·16과 관련된 콘텐츠 업데이트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리자드는 한국에서 대규모 행사와 다양한 협업 등을 통해 ‘블리자드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K팝 가수 ‘르세라핌’과는 2년 전 뮤직비디오를 함께 만든 것에 이어 오버워치2에 활용되는 아이템도 함께 출시할 예정이다. 오는 8일에는 서울에서 세계 6개 지역에서만 열리는 ‘워크래프트 30주년 커뮤니티 이벤트’도 연다. 이 밖에도 블리자드의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디아블로’ 팬으로 알려진 백종원 대표가 운영하는 ‘빽다방’ ‘홍콩반점’ 등과 협업 제품을 출시하고, 웹툰 작가 조석과 함께 디아블로4 웹툰을 선보이는 등 지속적으로 한국의 문화 콘텐츠와 자사 게임을 엮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조해나 사장은 “이는 기존 게임 이용자뿐 아니라 K팝과 같은 주류 문화의 다른 팬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라며 “e스포츠나 음악, 영화 등으로 지식재산권(IP) 협업 반경을 넓혀나가면서 ‘블리자드의 게임은 새롭다’는 느낌을 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된 블리자드는 MS가 출시한 RPG 게임 ‘어바우드(Avowed)’를 블리자드의 게임 플랫폼 ‘배틀넷’을 통해 서비스하는 등 앞으로 양사 간 시너지를 높여 나갈 예정이다. 조해나 사장은 “블리자드는 자체 개발한 강력한 포트폴리오가 있기 때문에 하스스톤과 스타크래프트 간의 협업 등 서로 다른 프랜차이즈를 엮은 새로운 콘텐츠 개발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