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인프라 경쟁에서 한국은 경쟁국에 뒤처질 위기다. 네이버가 2023년 세종시에 문을 연 ‘세종 각’은 국내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다. 네이버는 이곳에서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사업과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 학습을 함께 한다. 여기에 들어간 엔비디아 AI 칩(A100 모델)은 2240장이다. ‘오사카 데이터센터’의 50분의 1 수준이다.
한국은 투자 자본 부족과 주민 반대, 규제 등으로 데이터센터 신설이 쉽지 않다. 세계 클라우드 점유율 1위인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는 2023년 초 인천 서구에 5000억원을 들여 100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용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지역 구의원이 “전자파 불안”을 이유로 반대 시위에 나서면서 지난해 말에야 겨우 착공했다. AWS가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는 1년 5개월 만인 작년 8월에 이미 완공됐다. 한 국회 보좌관 출신 기업인은 “처음에는 지역 정치인들이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겠다고 나서지만, 막상 짓겠다고 하면 ‘전자파’ 등 비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민원 리스크’는 글로벌 빅테크가 한국을 AI 데이터센터 후보지에서 제외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삼성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클라우드 업체가 한국을 AI 거점으로 계획했다가 최근 철회했다”면서 “국내 특유의 민원 리스크 때문에 일본·인도·말레이시아로 선회하고 있다”고 했다.
규제와 전력 수급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르면, 10메가와트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전력망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많은 데이터센터는 대형 발전소가 있는 영호남에 지을 수밖에 없다.
자본력도 뒤떨어진다. AI용 데이터센터는 AI 칩 가격을 포함해 최소 수조 원이 든다. 외국에선 빅테크와 투자회사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업체까지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AI 모델 기술에선 앞서 있어도, 자본력에선 일본·싱가포르 등에 밀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