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런드리고)가 작년 11월 준공한 약 1500평(5000㎡) 규모의 세탁 공장 내부 모습. 호텔, 헬스장, 미용실 사업자의 세탁물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공장이다. /의식주컴퍼니

스타트업 마인이스는 중고 의류를 매입해 검수·재가공을 거쳐 되파는 전자상거래 앱 ‘차란’을 운영한다. 지난해 6월 경기도 남양주시의 검수·물류 센터를 1240평 규모로 확장했다. 2023년 9월 700평짜리 센터를 세운 지 1년도 안 돼 재투자에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금 154억원의 절반 이상을 인프라에 투자했다. 이 회사 김혜성 대표는 “서비스 초기에 물류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하다 보니 배송 사고나 제품 품질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며 “투자 혹한기지만 위기일수록 옥석이 가려진다는 생각에 물류 전 과정을 직접 하기 위해 투자를 했고, 그 덕분에 재구매율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찬바람이 불지만, 오히려 인프라에 큰돈을 투입하는 ‘역발상 투자’에 나서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소비자의 판단 기준이 높아졌다”며 “이젠 마케팅을 통해 사람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서비스 품질 차별화를 위해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인프라 투자 없이 경쟁 힘들어져

2021년 설립한 스타트업 ‘딜리버스’는 인공지능(AI) 로봇 기반의 물류 서비스를 개발해 전자상거래 기업들에 배송 서비스를 한다. 오후 2시 이전에 주문한 물품은 그날 배달하는 ‘당일 배송’이 주력 서비스다. 작년 12월 경기 이천에 1615평 물류 센터를 건립했다. 수도권 중심이던 서비스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설비 규모를 5배 이상 늘린 것이다. 이 회사 김용재 대표는 “배송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류 스타트업도 인프라 투자를 해야 한다”며 “이번 투자로 처리 가능 물량이 하루 3만건에서 10만건으로 크게 늘었고, 배송만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중 처음으로 충남 천안과 아산까지 서비스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쿠팡과 네이버 중심으로 빠른 배송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류 전문 스타트업 역시 적극 투자에 나선 것이다.

작년 12월 물류 스타트업 '딜리버스'가 경기도 이천으로 확장 이전한 물류센터. 인공지능(AI)으로 작동하는 노란색 로봇들이 택배 물품을 자동 분류한다. /딜리버스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비대면 세탁 배달·수거 서비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는 2022년 경기 군포시 당정동에 3600평 규모 스마트 세탁 공장을 세운 뒤 지금까지 이 공장에만 누적 100억원을 투자했다. 최근에는 20억원을 들여 전자 라벨(RFID)과 합포장 및 출고 자동화 같은 첨단 시스템을 추가로 갖췄다.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자동화는 단기적 비용보다 장기적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을 중시한 결정”이라며 “경기 불확실성으로 경쟁 업체와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고, 인력 수급 문제도 심각한 만큼, 이럴 때일수록 핵심 공정을 직접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의식주컴퍼니는 작년 11월 경기도 파주에 호텔·헬스장·미용실 같은 기업 세탁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약 1500평 규모의 세탁 공장도 신설해 가동 중이다.

◇SW 스타트업도 인프라 투자

인프라 투자는 실물 서비스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AI 교육 플랫폼과 AI 전용 클라우드(원격 서버) 서비스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엘리스그룹은 지난해 200억원의 글로벌 투자를 유치했다. 이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2년 내 부산 AI 데이터센터 건립에 쓰겠다고 밝혔다. 국내 스타트업이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데이터센터 설립에는 대당 수천만 원을 넘는 AI 칩이 대규모로 들어간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사업이다. 엘리스 관계자는 “2015년부터 관련 사업을 시작한 만큼, 다른 기업보다 AI 칩이 저렴할 때 대량으로 확보해둔 상황”이라며 “최근에는 국내 AI 칩 개발사 리벨리온·퓨리오사와 제휴를 맺는 등 원활한 AI 칩 수급에 적극 나섰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데이터센터 건립에 나선 것은 비용 때문이다. AI 서비스 제공을 위해 AWS(아마존웹서비스)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미국 빅테크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때 비용이 장기적으로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엘리스그룹 관계자는 “개발비를 감안해도 자체 개발한 클라우드 서비스가 기존 상용 클라우드 서비스보다 80% 저렴했다”며 “특히 공교육이나 공기관에 서비스할 때 보안 문제도 있어 외부 클라우드·데이터센터를 활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엘리스는 당장 4월부터 AI를 도입하려는 각 기업 수요에 따라 여러 AI칩을 골라 탑재 가능한 컨테이너 형태의 맞춤형 이동식 모듈형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에 나선다. 선제적인 인프라 투자를 통해 더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