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바하마섬 인근에서 어미 대서양점박이 돌고래가 새끼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뿌우’라며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러자 새끼들이 어미 곁으로 모였다. 이 소리는 실시간으로 녹음돼 주파수 형식의 이미지(스펙트로그램)로 변환되고, 인공지능(AI) 모델이 이를 학습한다. 다음에 또 ‘뿌우’ 같은 소리가 포착되면, AI는 어미 돌고래가 ‘이제 모여’라는 신호를 새끼에게 보낸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AI는 돌고래가 내는 소리와 행태를 반복 학습하면서 돌고래의 의사를 파악한다.
AI는 돌고래가 내는 주파수를 파악해, 똑같은 소리를 낼 수도 있다. AI가 ‘뿌우’라는 소리를 내면 새끼 돌고래가 어미 곁으로 모여든다. AI와 돌고래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것이다.
구글은 지난 14일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든 AI 모델 ‘돌핀제마(DolphinGemma)’를 공개했다. 돌고래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AI를 만든 것이다. 앞으로 AI를 통해 판타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동물과 인간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구글, ‘돌고래와 대화’ AI 개발
구글은 미국 조지아 공대, 돌고래 연구 기관인 ‘야생 돌고래 프로젝트(WDP)’와 손잡고 돌핀제마를 개발했다. 이들은 돌고래가 내는 소리를 이미지 형태로 바꿔 분석한 후 AI에 학습시켰다. 돌고래와 유사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돌고래와 직접 소통하는 것까지 개발 중이다. 구글은 올해 여름에 돌핀제마 모델을 오픈소스(개방형)로 공개할 예정이다. 구글은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돌고래 소리를 듣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앞으로 인간과 돌고래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종(種) 간에 의사소통을 하는 AI 모델 개발은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AI 모델이 다양해지고 고도화되면서, 동물의 행동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의 의사를 동물에 전달하는 수준까지 개발되고 있다.
돌고래뿐 아니라 새, 설치류, 코끼리 등 연구 대상도 다양하다. 실제 고래와 대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미 SETI연구소는 캘리포니아대 등과 함께 ‘트웨인’이란 이름의 혹등고래와 대화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혹등고래의 소리를 분석한 뒤 ‘인사’ 소리를 미리 녹음해 재생했고, ‘트웨인’이 이 소리를 듣고 연구진이 탄 배 주변을 맴돌며 일정한 간격의 소리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 같은 약 20분간의 대화는 과학 저널 피어제이에 게재됐다. 미 워싱턴대 연구진은 설치류의 소통법을 해석하는 머신러닝 도구 ‘딥스퀴크(DeepSqueak)’를 개발하기도 했다. 쥐는 의사소통에 초음파를 이용하는데, 구애와 같은 긍정적 상황과 통증을 느끼는 등 부정적 상황에서의 초음파가 다르다고 한다. AI를 통해 이런 초음파를 분석해 쥐의 감정과 의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케냐·미국의 공동 연구팀은 코끼리 스트레스를 방지하고 밀렵을 방지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코끼리 언어 해독 연구’를 진행 중이며, 예일대에서도 AI 도구를 이용한 설치류 행동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동물 언어 이해해 생태계 보호
비슷한 연구와 기술 개발은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 동물의 소리, 움직임, 표정, 행동을 이미지·동영상·소리 등 다양한 형태로 AI에 학습시켜 의미 있는 패턴을 도출한다. 이를 통해 AI가 동물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하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동물이 이해 가능한 소리나 행동을 흉내 내 동물과 소통하는 방식도 개발되고 있다.
인간 외 다른 종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동물과 생태계 보호에도 도움을 준다. AP통신은 “벨루가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내는 소리를 파악한다면, 벨루가를 피해 운항하도록 주변 선박에 미리 경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인간에 의해 서식지가 줄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의사를 이해해 이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코끼리, 닭 등 다양한 동물의 소리와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해석하는 AI 모델을 개발한 글로벌 비영리단체 ‘어스스피시스프로젝트(Earth Species Project)’는 “동물의 복잡한 대화와 행동을 이해해 여러 종의 의사소통 방법을 알 수 있게 된다”며 “나아가 전체 지구 생태계의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