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베이징 이좡 남해자공원. ‘2025베이징 이좡 하프마라톤 겸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일반인 참가자들이 모두 출발한 직후, 20대의 중국산 로봇이 2~3분 간격으로 출발선을 나섰다. 세계 최초로 열린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마라톤 대회다. 로봇은 21㎞의 경사로와 커브길이 섞인 하프마라톤 코스를 달렸다. 대회 우승을 차지한 로봇은 베이징휴머노이드로봇혁신센터·유비테크의 ‘톈궁 울트라’. 완주 기록은 2시간 40분 42초였다.
‘휴머노이드 마라톤’은 단순한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다. 2족 보행 로봇이 2시간 이상, 다양한 장애물이 있는 도로를 스스로 달리기 위해선 첨단 기술들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주변을 인식하고, 로봇 관절에 장착된 첨단 모터로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하며, 배터리 성능을 통해 내구성을 갖춰야 한다. 지난 1월 저비용·고성능 AI ‘딥시크’로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듯이, 이번 대회를 통해 중국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경철 KAIST 교수는 “중국의 로봇 하드웨어 기술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자명하고, 소프트웨어 역시 차원이 다르게 발전했다”고 말했다.
휴머노이드는 산업 현장과 일상생활을 넘어 궁극적으로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올해 전 세계 휴머노이드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평지·경사·우회전·좌회전… 스스로 코스 찾으며 속도 조절
이번 로봇 마라톤 대회는 인간과 같은 경로를 달리는 대회였다. 평지와 최대 9도의 경사로가 포함됐고, 우회전과 좌회전을 각각 8번과 6번 해야 하는 코스였다. F1 자동차 경주처럼 중간에 배터리를 교체하는 것이 허용됐다. 다만 로봇 본체를 교체하는 경우 페널티가 적용됐다. 로봇은 조종수와 기술자가 동행하면서 달렸다. 조종수는 로봇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프로그램 등을 바꾸는 제한적 역할을 한다. 제한 시간은 3시간 30분. 일부 로봇은 출발하자마자 쓰러지거나 중간에 주저앉아 탈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참가 로봇 가운데 6대는 끝까지 완주에 성공했다.
우승을 차지한 ‘톈궁 울트라’는 키 180㎝, 몸무게 52㎏로, 시속 8~10㎞ 속도로 전 구간을 달렸다. 경기 중 배터리 고장으로 한 차례 넘어졌고, 모두 세 차례 배터리를 교체하며 완주했다. 2등은 베이징 숭옌둥리의 ‘N2’가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 참여한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사람처럼 달리기 위한 첨단 기술들이 적용됐다. 톈궁 울트라는 탑재된 무선 항법 기술을 활용해 장거리 경로를 스스로 따라가며 레이스를 펼쳤다. 운동 제어 알고리즘과 다중 모드 센서, 초광대역(UWB) 무선 기술을 결합해 로봇이 길을 훤히 아는 마라토너처럼 실시간으로 달리는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도록 한 것이다.
2위를 차지한 베이징 숭옌둥리 로봇 ‘N2’는 120cm 작은 키에 종종걸음이 특징이다. 보폭은 좁지만 그만큼 발을 재빨리 움직이는 ‘고(高)빈도 걸음 알고리즘’이 탑재됐다. 속도는 최대 시속 약 12.6km까지 낼 수 있지만, 안정적인 주행을 위해 시속 8.3km 수준까지 줄였다고 한다. 제조사는 “탄력 있는 관절과 무게 중심 조정 기술을 결합해 복잡한 지형에서도 걷기뿐 아니라 점프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
이번 대회는 중국 2족 보행 로봇의 진보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봇 개 같은 4족 보행 로봇은 균형을 잡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고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은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다. 실험실에서 통제된 상황이 아닌 경사나 자갈길 같은 변수가 많은 지형에서는 로봇이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AI 등의 알고리즘을 적용해 대회 완주에 성공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리더봇 등 10개 기관이 공동 발간한 보고서는 “2025년은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실험실 단계를 벗어나 상용화로 접어드는 원년”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