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9일 세계에서 처음 개최한 ‘휴머노이드 로봇 마라톤 대회’ 현장에선 응원 소리만큼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속도가 느린 로봇도 있었고, 여성의 얼굴을 붙인 휴머노이드는 출발하자마자 주저앉아 버렸다. 균형을 잃고 관중석으로 돌진한 로봇도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가 갖는 의미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모든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이나 한정된 실내·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 공간인 도심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대회에 앞서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중국 로봇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그래픽=백형선

휴머노이드 로봇은 올해 초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말한 ‘피지컬 인공지능(AI)’의 대표 기술이다. ‘피지컬 AI’는 컴퓨터 속에만 존재하던 AI가 로봇 같은 기계에 탑재돼 인간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움직이는 기술을 말한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AI, 센서, 정밀 제어, 배터리 등 첨단 기술이 총집약된 분야”라며 “중국이 이 분야를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은 산업적 차원을 넘어 군사적 활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中, 로봇 병기 이어 휴머노이드까지

이번 대회에서 1위를 한 톈궁 울트라는 사실상 지치지 않는 기계 인간이나 다름없다. 톈궁은 힘이 센 관절(고출력 관절)과 가볍고 빠른 다리(저관성 다리 설계)를 갖춰 최대 시속 12km의 속도를 구현했다. 특히 경량화 구조와 높은 강성 소재, 정교한 충격 완화 설계를 더해 장거리 주행 중에도 기체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관절 열전도 기술과 전신 열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장시간 연속 주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로봇 지능 플랫폼을 탑재해 사고 능력을 갖춘 대뇌, 운동 능력을 갖춘 소뇌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해,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야전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이미 중국은 첨단 기술을 치안 유지와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공안은 타이어 모양의 굴러다니는 경찰 로봇을 배치했다. 최대 시속 35km 속도로 범죄자를 추적하는 자율주행 로봇이다. 카메라 센서로 안면 인식을 통해 지명수배자를 식별하며, 그물총도 발사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지난해 11월 중국 국영방송 CCTV에 따르면, 중국 국방 과학기술 업체 중국병기장비그룹은 자체 개발한 네 발 달린 늑대 로봇을 공개했다. 늑대 로봇은 고화질 카메라,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 소형 레이더 등 정찰 장비를 장착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다. 또한 가벼운 총기를 탑재해 공격을 할 수도 있다.

이미 세계 드론 시장 7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은 군집 비행이 가능한 드론부터 자폭이 가능한 드론까지 다양한 군사용 드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자국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활용해 수만대 이상의 군사 로봇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기술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로봇 육성에 국가적 역량 총동원

중국은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2020년 14.5계획(제14차 5개년 계획) 등 국가 전략을 통해 로봇 산업을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2023년 10월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혁신 및 발전을 위한 지도 의견’을 통해 2027년까지 세계 선두 수준의 기술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에서 ‘지도 의견’은 중국 정부와 당 차원에서 특정 정책에 대해 내리는 지침으로 강한 강제력을 갖는다. 이 같은 국가의 동원령에 샤오미·화웨이 등 중국 1세대 빅테크 기업들이 로봇 개발에 뛰어들면서 중국 기술 업계의 연구·개발(R&D) 역량이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로 집중됐다. 이들 기업의 참여로 하드웨어뿐 아니라 AI, 센서, 반도체 등 첨단 부품과 소프트웨어까지 이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여기에 중국이 급부상한 전기차 산업도 한몫했다. 전기차에 쓰이는 주요 부품인 액추에이터(작동 장치), 라이다 센서, 배터리 등은 전부 로봇에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은 산학연 연계가 원활해 생태계 확장 속도가 빠른 데다, 자본 유입 규모가 커서 단기간에 ‘스타 기업’이 탄생하는 구조다. 특히 올해가 중국에서는 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가 투입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저우자동차·비야디·샤오펑 등 자동차 회사들의 로봇과 샤오미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의 로봇도 산업 현장에 쏟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9일 “저렴한 부품, 빠른 혁신 속도, 정부 투자가 중국 로봇의 비결”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