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산(産) 일부 반도체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징은 25일 반도체를 수입하는 복수의 중국 테크기업 관계자들을 인용해 “(관세 품목 분류 기준) 8종의 미국산 반도체 관련 제품에 대해서는 기존 125%에 달했던 추가 관세 조치가 해제됐다”며 “다만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가 관세 조치가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CNN도 같은 날 “중국 광둥성 선전의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에서 제조된 반도체 일부에 대한 125% 보복 관세를 중국이 조용히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 중국에 대한 관세율 조정을 시사한 가운데, 중국 또한 미국에 대해 유화적인 관세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중국 당국이 공식 발표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중국 업계에는 이미 미국산 반도체 관세 면제 방침이 하달됐다. 상하이의 한 반도체 제조업체 관계자는 차이징에 “24일 오후 중국 관련 부처가 소집한 회의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수입하는 일부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통보됐다”면서 “이들 제품에는 13%의 부가가치세만 부과된다”고 했다. 그는 또 “4월 10~24일 미국산 반도체 수입 건 관련 납부한 관세에 대해서는 환급 신청이 가능하다고 전달 받았다”면서 “이번 주 수입한 미국산 반도체에 대해 실제로 추가 관세가 면제됐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의 이번 관세 철회 대상에 메모리 반도체는 포함되지 않았다. 창신메모리 등 국가 주도로 설립한 거대 기업들이 과잉 공급 수준으로 중국에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공장을 가동 중인 한국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격화된 미중의 ‘관세 치킨 게임’이 양국의 경제 타격 확산 우려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이번 면제 조치는 중국이 자국에서 생산하거나 다른 곳에서 조달할 수 없는 중요 품목에 대한 일부 관세를 철회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중국 관세의 영향을 받는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글로벌 파운드리 등 미국 반도체 기업에 (이번 조치가) 도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반도체는 117억 달러(약 16조원) 규모에 달한다.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이 미국산 의료 장비와 에탄, 항공기 등 일부 수입품목에 대해서도 관세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의 공장들은 미국산 에탄 의존도가 높고, 중국 병원들은 GE헬스케어 등 미국 기업의 고급 의료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번 관세 철회가 자국 조달이 어려운 제품에 한정돼 미중 관세 갈등 해소의 신호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총 145%에 달하는 보복 관세를 매긴 상황에서 전자제품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자 중국이 이에 맞춰 자국에 유리한 대응을 택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베이징의 싱크탱크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미국산 제품 관세 면제 조치를 공식화할 가능성은 작다”면서 “미국에 대등하게 맞선다는 원칙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내부 지침을 통해 조치를 실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25일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중국과 접촉 중”이라고 했고, 전날에도 “중국과 매일 대화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24일 “양측은 관세 문제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지 않았다”며 “미국이 진정으로 합의를 원한다면 선의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