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HAP PHOTO-0381> 자주포 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 (바흐무트[우크라이나] A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피온 자주포를 발사하고 있다. 지난달 점령지 헤르손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요충지인 바흐무트를 점령하려고 최근 공세를 강화한 가운데, 우크라이나군 또한 바흐무트를 사수하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다. 2022.12.16 alo95@yna.co.kr/2022-12-16 09:04:56/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향방을 좌우할 국제 유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진영 간 대립, 경기 침체 우려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올 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배럴당 100달러 넘게 치솟으며 고공행진하던 국제 유가는 하반기 들어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 우려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유가 상한제를 시행하고, 이에 맞서 러시아가 보복 조치에 나서는 등 원유 공급 감소 위험이 크게 부각되며 유가 전망 셈법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가 상승·하락 요인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황이어서 경제 지표 예측도 덩달아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침체 우려 속 하락하는 油價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배럴당 123달러(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 기준)를 찍은 뒤 한동안 100달러 위에서 움직이던 유가는 하반기 들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국의 금리 인상으로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원유 수요 감소 전망이 우세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셰일 기업의 시추 확대, 미국 바이든 정부의 전략 비축유 방출 등 대대적 공급 증대 노력이 이어진 것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지난 7일 기준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72.01달러로 하반기에만 32% 떨어졌다. 미국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경기 둔화에 따른 유가 추가 하락을 점치는 전문가가 많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도 최근 보고서에서 WTI와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10%가량 낮췄다. 엘리 테스파예 RJO퓨처스 선임 시장전략가는 로이터에 “시장 심리는 부정적”이라며 “이대로라면 조만간 WTI가 배럴당 60달러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감산(減産)량을 더 늘리지 않고, 종전 규모(하루 200만배럴)를 유지하기로 한 것도 유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대 변수로 떠오른 유가 상한제

수요 위축에 따른 유가 하락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등장한 것은 ‘유가 상한제’라는 대형 변수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일 대(對)러시아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유가 상한제’ 카드를 꺼내들었고, 미국을 포함한 G7(주요 7국)과 호주 등이 이에 동참한 상태다. 유가 상한제는 배럴당 60달러보다 비싸게 판매된 러시아산 원유를 수송하는 선박에 대해 해상보험을 적용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G7이 세계 해상보험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원유 수출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EU는 유가 상한 가격이 시장가격보다 5% 아래에 머물도록 2개월 단위로 검토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유가 하락세가 가속되겠지만, 문제는 러시아가 서방에 역공(逆攻)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유가 상한제에 참여하는 회사 및 국가에 원유 판매를 금지하는 대통령령을 준비하고 있고, 자국(自國) 원유 최저 판매가를 시장가격 수준에 고정하는 ‘유가 하한제’로 맞불을 놓는 안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점유율 16.5%)에 이어 세계 2위 원유 수출국(8.3%)인 러시아가 이 같은 초강경 대응에 나서면 글로벌 원유 공급이 크게 줄어 유가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노르웨이 리서치 업체 ‘라이스타드 에너지’는 유럽향(向) 해상 원유 수출이 중단될 경우 러시아의 원유 수출량이 하루 20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의 초강경 대응으로 육로를 통한 유럽향 파이프관 원유 수출 길마저 끊기면 수출 감소 규모는 하루 60만배럴로 늘어난다.

여기에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제3국까지 주요 변수로 등장하면서 유가 상한제는 2차 방정식이 아니라 3차 방정식이 됐다. 유가 상한제를 러시아산 원유를 싼값에 수입할 기회로 여긴 중국·파키스탄 등 일부 국가는 이미 러시아산 원유 도입에 적극적인 의사를 밝힌 상태다.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왕융중 주임은 “유가 상한제로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하게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게 됐다”고 했고,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파키스탄은 이달 초 정부 대표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해 러시아산 원유를 대규모로 공급받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가 유럽향 수출 물량을 다른 지역으로 돌릴 수 있다면 글로벌 원유 공급 감소에 따른 유가 상승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러시아는 이미 해상을 통한 원유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대비해 전쟁 이후 100척 이상의 유조선까지 구비해 놓았다.

올해 초 서방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제한했을 때 러시아가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도 중국·인도·파키스탄·인도네시아 등 다른 구매자들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對)유럽 해상 원유 수출은 지난 2월 중순 157만배럴(하루 기준)에서 지난달 말 47만배럴로 70% 감소한 반면, 아시아로의 수출은 100만배럴에서 232만배럴로 급증했다.

◇겨울 한파, 미국 비축유도 변수

이 외에도 유가의 향방을 점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겨울철 한파, 미국의 전략 비축유 매입, 미국 셰일 기업들의 원유 증산 여력 등이 주요 변수다. 미국의 비축유 매입은 통상 국제 유가를 0.4%가량 올리는 효과가 있는데, 전략 비축유 규모가 1984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진 상황이라 조만간 전략 비축유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 셰일 기업들은 지난달 말 기준 팬데믹 이전의 92% 수준인 627개 원유 시추공을 가동 중이라 증산 여력이 빠듯하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원자재 담당)은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는 국면이라 원유 수요는 서서히 줄어들겠지만 공급도 비교적 타이트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유가가 크게 하락하기 보다는 WTI 기준 배럴 당 70~100달러 범위의 박스권에서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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