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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雪山)이 유리 같이 맑은 바다 양옆으로 병풍처럼 도열했다. 거대한 빙하가 깎아낸 협곡을 따라 들어찬 차고 시린 바다가 한 폭의 그림 같던 에르스(Ers) 피오르.
지난달 29일 WEEKLY BIZ는 ‘북극의 관문’이라 통하는 노르웨이 트롬쇠(Tromsø)에서 서쪽으로 30분쯤 차를 달려 이 피오르에 도착했다. 노르웨이 3대 수산 업체인 레뢰이 시푸드 그룹 산하 ‘레뢰이 오로라(Lerøy Aurora)’가 청정 자연 속에서 길러내는 대서양 연어를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는 수중 카메라와 센서로 연어의 크기나 건강 상태는 물론 양식장 바닷물의 온도와 산소 농도, 염도 등을 24시간 추적 관리하고 있어요.” 안내를 맡은 이 회사 코디네이터 빌데 감스트는 첨단 양식 기술까지 동원된 양식 기법 소개를 이어갔다.
◇바다 위 첨단 양식장
현장 직원 안내를 받아 에르스 피오르 선착장에서 노란 작업복 차림으로 환복하고 안전모까지 쓴 채 쾌속정으로 20분쯤 달리자 바다 위에 거대한 동그라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원둘레 160m, 깊이 35m짜리 가두리 방식의 양식장이다. 마치 손님 맞이라도 하듯 4~5kg짜리 어른 팔뚝만 하게 자란 연어들이 쉴 새 없이 양식장 수면 위로 펄떡 뛰어올랐다.
이곳 연어들이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건 우선 천혜의 환경 덕분이다. 1만년 전 빙하가 깎아 만든 계곡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피오르 지형은 수산물 양식에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북극해에서 흘러든 차가운 바닷물은 수산물을 천천히 더 실하게 키워낸다. 그러나 노르웨이 연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최적의 환경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 최초로 연어 양식을 시작한 노르웨이에선 이미 반 세기 넘는 양식 역사를 바탕으로 각종 IT(정보 기술)와 자동화 기술까지 동원하고 있다.
현장 직원들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수중 카메라 여러 대를 끌어올려 보이며 말했다. “우리는 연어의 먹이 활동이나 건강 상태, 이상 행동 여부 등을 체크하는 수중 카메라를 이용해 이곳에서 키우는 수십 만마리의 연어 상태를 모니터링합니다.” 이 카메라로 연어가 사료를 얼마나 먹는지까지 확인해 과잉 사료 배급을 막아 사료 값 낭비도 막고 환경 오염도 줄이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선 한 개 가두리 양식장에서 약 11만 마리의 연어를 키워 총 5개 가두리에서 55만 마리의 연어를 길러낸다. 그런데 이 많은 연어를 관리하는 직원은 딱 7명뿐이다. 그마저도 교대 근무 시스템이라 실제로는 4명의 직원이 55만 마리의 연어 먹이 배급부터 상태 체크까지 모든 관리를 맡는다. 자동화된 관리 시스템 덕분이다.
◇AI로 기생충 관리까지
노르웨이 연어를 더 안전한 먹거리로 만드는 비결엔 인공지능(AI) 기술도 숨어있다. 이 피오르 선착장 부근에 있는 레뢰이 오로라 현장 사무실에서 팀 리더 사이먼 엘리세우센은 기자를 관리 모니터 앞으로 안내했다. “이 화면을 보세요. 붉은 레이저가 쏘아져 연어에 붙은 기생충을 없애고 있는 겁니다.”
양식장에서 자라는 수십만 마리의 연어에 기생충이 있는지 사람 눈으로 일일이 확인해 조치를 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여기에선 수중 카메라가 수시로 연어의 몸 상태를 찍어 기생충이 붙었는지 AI로 판별해 낸다. 기생충이 붙은 연어가 발견되면, 즉시 수중 카메라와 연결된 장치에서 붉은 레이저가 발사돼 연어 비늘에 붙은 기생충만 죽여 떨어뜨리는 식이다. 더그 설리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NSC) 커뮤니케이션 고문은 “지구온난화로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기생충 확산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노르웨이 양식장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AI와 레이저를 동원해 기생충 관리를 하는 건 매우 새로운 기술이며 이런 기술은 이미 노르웨이의 여러 양식 업체에서 두루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노르웨이에선 각종 항생제 사용 역시 ‘제로(0)’에 가깝다. 레뢰이 오로라 측도 연어 양식에 전혀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NSC의 폴 안달 수산물 애널리스트는 “노르웨이에선 이미 다양한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돼 수산물 양식에 쓰이고 있다”고 했다. 항생제를 쓰지 않고 건강한 연어를 길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연어·고등어를 잇는 다음 수산물은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 수산 대국 중 하나다. 수산물 수출액이 155억달러(2022년 기준)에 이르러 중국에 이어 전 세계 둘째로 많은 나라다. 한국으로 향하는 노르웨이 수산물도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NSC 통계에 따르면 한국으로 수출된 노르웨이 수산물의 양은 지난해 7만7427t으로 10년 전인 2014년 4만6345t 대비 67% 늘었다. 수출액으로 따지면 같은 기간 1317억원에서 6734억원으로 약 5배 수준으로 불어난 상태다.
다만 노르웨이가 한국에 수출하는 수산물 대부분이 고등어와 연어에 너무 집중됐다는 점이 노르웨이 수산 업계의 고민이다. 지난해 기준 노르웨이에서 수입한 수산물은 총 7만7427t이었는데, 이 가운데 연어(2만9394t)와 고등어(4만3093t)가 전체의 93.6%를 차지한다. 이에 노르웨이에선 한국 시장에 맞는 새로운 수산물을 찾아 선보이겠다는 설명이다. 마스 프레데릭센 북극경제이사회 사무국장은 “노르웨이의 마케팅 덕분에 1980년대 일본에서 초밥 위에 노르웨이산 연어를 얹은 연어초밥이 탄생했다”며 “수산물도 마케팅이 필요한 시대고, 킹크랩이나 성게 등 한국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다른 수산물이 뭐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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