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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시장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 공매도의 대가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UPI 연합뉴스

“저는 지난 8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싸우거나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데 보냈습니다. (이제는) 이 회사를 세우면서 계획했던 건 성취했다고 느낍니다.”

공매도 행동주의 투자 회사 힌덴버그 리서치의 네이트 앤더슨 창업자는 지난달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공매도 행동주의 투자 회사는 주가가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하는 기업 주식을 공매도한 뒤, 그 기업의 사기 의혹 등 문제점을 집중 거론해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을 낸다. 이에 먹잇감이 될 기업을 끊임없이 찾아 공격해 ‘월가의 하이에나’란 말까지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공매도 투자 회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몇 년 동안 저명한 공매도 투자자가 잇따라 물러났고 앤더슨도 그중 한 명”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공매도 손 떼는 거물급 투자자

이번에 은퇴를 선언한 앤더슨은 미 코네티컷대에서 국제 경영을 공부한 뒤 이스라엘에서 구급차 운전사로 일하다 2017년 힌덴버그를 세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2020년 힌덴버그는 ‘제2의 테슬라’로 기대를 모았던 미국 전기·수소 트럭 업체 니콜라의 사기 행각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내며 공매도 시장의 스타로 뛰어올랐다. 예컨대 니콜라가 빠르게 달리는 트럭 영상을 찍으려 트럭을 언덕 위에 견인했다가 굴러 내려오는 모습을 찍었다는 등 여러 사기 사례를 폭로한 것이다. 이에 2020년 9월 8일 1주당 50.05달러에 달했던 니콜라 주가는 보고서 공개(9월 15일) 이후 주당 19.46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뿐이 아니다. 힌덴버그는 2023년 1월 ‘세계 3위 부자는 어떻게 역사상 최대 규모 사기를 벌였나’라는 보고서에서 인도 재벌 ‘아다니그룹’의 주가조작 정황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여파로 아다니그룹의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 넘게 증발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WSJ에 “앞으로는 취미와 여행을 즐기고 약혼녀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속속 시장을 떠나는 공매도의 대가는 앤더슨뿐이 아니다. 2000년 에너지 회사 엔론에 대한 공매도에 나서며 큰돈을 번 짐 채노스 키니코스캐피털 창업자도 2023년 11월 “나는 여전히 기업 분석과 투자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이제는 (공매도 중심의 투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열정을 풀어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 대니얼 로브 서드 포인트 최고경영자(CEO) 등도 한때 공매도 시장을 이끌었지만 현재는 사실상 손을 떼다시피 한 거물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에서 “공매도를 공매도해야 할 때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6년 265건에 달했던 전 세계 공매도 공격 건수(미 블룸버그와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는 2023년 110건으로 반 토막 났다.

◇강세장과 규제 당국 조사까지

그렇다면 공매도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시장에서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거듭하며 공매도 투자자들이 설 곳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미 증시 대표 지수인 S&P500 지수는 2023년(24.2%)과 지난해(23.3%) 모두 20%대 상승했다. 주가 하락에 베팅해 수익을 챙기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장기간 이어진 강세장에 손실만 키웠다는 뜻이다. 더구나 공매도 투자자들은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규제 당국의 조사를 겪기도 하고, 공매도에 대한 일반 투자자들의 비판 대상에 올라 여론의 뭇매를 맞는 등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명 공매도 투자자인 시트론 리서치의 앤드루 레프트는 작년 7월 공매도를 통한 증권 사기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그는 “공매도는 끊임없이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안 좋은 사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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