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가 시작되고 한 달 동안 세계가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그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관세(tariff)’일 듯합니다. 트럼프는 관세를 통해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돌아오게 만들겠다”고 주장합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 관련 주장은 합리적일까요. 관세를 올리면 트럼프가 말하는 ‘일자리 효과’가 나타날까요. 그게 아니라면, 트럼프는 왜 이런 관세 전쟁을 시작했을까요. 이런 궁금증에 답하고자 통상 정책과 관련한 미 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의 책 ‘공격받는 자유무역(원제 ‘Free Trade under Fire’)’을 WEEKLY BIZ가 밑줄 치며 읽었습니다. 자유무역의 원리와 역사를 세세하게 분석한 책입니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이해하기에 유용한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상호 관세의 원래 목표는 관세 인상이 아닌 인하였다
트럼프는 지난 13일 대통령 각서(명령서) ‘상호 무역과 관세’에 서명하며 “미국의 평균 관세가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국 관세에 맞춰 미국 관세를 끌어올리는 ‘상호 관세’를 도입한다고 밝혔지요. 세계은행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의 평균 관세는 1.5%(무관세 포함, 수입 품목별 가중치 적용)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
‘트럼프 상호 관세’의 근거로 요즘 거론되는 법이 1934년 제정된 ‘상호 무역법(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RTAA)’입니다. 상호 관세에 관한 내용을 담아 ‘상호 관세법’이라고도 불립니다. 어윈 교수의 책엔 대공황 당시 RTAA가 제정된 배경과 취지가 잘 설명돼 있습니다. 요지는 RTAA가 트럼프의 구상과 달리, 관세 인상이 아닌 인하하려고 만들어진 법이라는 겁니다. 책을 인용합니다.
“(1920년대 말 시작된) 대공황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세계 각국은 경제 붕괴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고 고용을 늘린다며 필사적으로 관세를 인상하고 수입 쿼터(물량 제한선)를 부과했다. 보호무역주의를 향한 이런 움직임은 교역 상대국의 수출을 붕괴시켰고 세계 경제는 더욱 악화했다. 이에 미 의회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1934년에 RTAA를 제정했다. RTAA는 ‘대통령이 (직권으로) 수입 관세를 절반까지 낮출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의회는 이와 함께 무조건적인 ‘최혜국 조항’도 승인했는데, 이에 따라 미국이 한 나라에 낮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 이 관세가 다른 국가에도 적용되게 되었다.”
RTAA 통과 직전 평균 60%에 육박하던 미 관세는 이후 10년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1947년엔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 자유무역 협정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 체결됐고, 이후 자유무역 증진을 위한 세계무역기구(WTO)까지 설립되면서 관세는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습니다.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죠.
◇수입이 늘 때 일자리는 오히려 증가했다
트럼프는 외국산, 특히 중국산 상품이 미국에 쏟아져 들어와 미국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어윈 교수가 책에 인용한 매사추세츠공대(MIT) 데이비드 아우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0~2007년까지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150만개 감소한 데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라는 원인이 21%를 차지한다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통계엔 맹점도 있습니다. ‘중국산 수입 증가가 미국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소비자가 미국산 대신 중국산을 사면서 미국 제조업의 생산량이 하락하고 일자리 또한 동반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해야 합니다. 반대로 제조업 생산이 늘면 일자리가 함께 증가해야 할 것이고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미국의 제조업 생산 및 일자리를 지수(1970년=100)로 만들어 비교한 그래프(위 그래프는 WEEKLY BIZ가 최신 통계까지 업데이트)가 나옵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미국의 제조업 생산이 늘어나는 기간에도 일자리는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시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2000~2005년 제조업 생산 지수는 250에서 265로 상승했는데, 일자리는 97에서 81로 하락했습니다. 다른 기간을 보아도 제조업 생산과 일자리의 상관관계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은 “(제조업 생산과 일자리의) 대조적 경향은 생산성과 고용이 상충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합니다. ‘생산성’이란 노동력·토지 등 일정 단위의 자원으로 만들어내는 생산량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입니다. 생산성이 좋아질 경우 동일한 생산량을 만들 때 노동력이 덜 필요하겠죠. 같은 노동력이 투입된다면, 생산성 개선이 생산량을 늘어나게 만들 테고요.
어윈 교수는 수입 증가가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 중 하나라고 치더라도 생산성, 노동 인구, 경기, 기술 발전 등이 일자리엔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고 설명합니다. 경기를 예로 들면, 경기가 좋아질 때는 소비가 늘면서 해외로부터 수입이 증가하고 동시에 미국 제조업이 살아나 일자리가 함께 늘어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실제로 수입 물량과 일자리 수가 (트럼프 주장대로) 반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정비례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역 통계의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가 근거로 드는 상품 수지 적자 등 무역 통계 자체에도 왜곡이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을 무역 통계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책을 인용합니다.
“과거엔 상품 수출국이 자국에서 생산하던 다양한 부품과 구성 요소가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생산돼 국경을 여러 번 넘으며 거래되고 있다. 이 현상을 ‘수직 전문화’라고 한다. 중간재와 부품이 세계 무역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생산 공정이 세분화되는 현상이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수직 전문화는 1960년대 이후 미국 무역 성장의 약 절반을 차지했으며 1970년 이후 세계 무역 증가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얽히고설킨 공급망의 대표적 사례로 책은 애플의 아이폰을 들고 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마트폰 브랜드이자 중국의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중국이 아이폰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할 경우, ‘진짜 중국산’은 얼마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요. 어윈 교수는 책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이폰 뒤에는 ‘캘리포니아 디자인, 중국 조립’이라고 쓰여 있다. 이는 아이폰이 어느 한 국가에서만 ‘메이드(made·제작)’됐다고 할 수 없음을 뜻한다. 아이폰은 도시바(일본)의 디스플레이, 삼성전자(한국)의 반도체, 인피니온(독일)의 카메라·위성 항법 장치, 브로드컴(미국)의 무선 랜 등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져 중국에서 최종 조립되는 부품 수백 개의 합체다.”
무역 통계엔 아이폰이 2017년 한 해 미국에 무역 적자를 157억달러 더했다고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폰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로 중국이 기여한 ‘조립’이 차지하는 비율은 3.6%(원가 240달러 중 8.46달러·아이폰7 기준)에 불과하다고 책은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설명합니다.
◇보호무역은 소비자를 희생해 생산자를 돕는 정책이다
경제학자들이 ‘실익이 없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 정책은 세계의 많은 지도자에게 여전히 인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가 아닌 정치라고 어윈 교수는 설명합니다. 자유무역이 국가 전체의 부(富)를 불린다 해도 지역 혹은 산업별로는 그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지역구의 정치인들이 무역 장벽을 올리자고 경쟁적으로 밀어붙이면 (대공황 때처럼) 관세 인상 조치가 중구난방으로 내려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정치인들은 이를 성과로 내세워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약’을 팔 수 있겠고요.
어윈 교수는 관세 인상이 소비자 전체에게 (물가 상승 등으로) 고루 피해를 입히고 그 대가로 일부 생산자에게 이득을 몰아주는 정책이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관세 인상은 국가 전체적으로 손해라고 책은 설명합니다. 책에 나온 통계를 하나 더 인용하면,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관세 인상으로 미국이 추가로 벌어들인 관세는 약 360억달러, 관세 인상으로 판매가 늘어난 기업의 추가 수입은 99억달러였습니다. 하지만 물가 상승 등으로 소비자가 입은 총손실이 528억달러에 달해 국가 전체로는 69억달러 손해(관세 추가 수입 360억+기업 이득 99억-소비자 피해 528억달러)가 발생했습니다.
특정 지역구의 ‘표심’에만 혈안이 된 지역구 의원들이 국가 전체의 경제를 해치지 않게 하려고, 미국은 1930년대 RTAA를 제정하면서 대통령이 의회를 통하지 않고 직권으로 관세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반면 국세는 의회 승인이 필수입니다.) 요즘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행정명령에 서명만 함으로써 관세를 마구 올릴 수 있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관세를 낮추자’는 제도 도입 당시의 취지를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부여된 관세 결정권을 관세 인상에 거꾸로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경제학자들이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공격받는 자유무역’은 어윈 교수가 일반인을 위해 쉽게 풀어 쓴 책입니다. 초판은 2002년에 나왔지만 저자가 이후 이어진 경제 상황을 반영해 개정판을 계속 냈습니다. 이 기사는 트럼프 1기(2017~2021년) 당시인 2020년 4월에 트럼프의 관세 정책 분석을 추가해 나온 개정 5판 영어 원본을 분석했습니다. 개정판은 한국어 번역본이 없고 초판도 한국에서 절판되어 아쉽습니다. 다만 초판은 일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습니다.
◇더글러스 어윈
미국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 통상과 관련한 미 학계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2017년에 낸 책 ‘상업 충돌: 미 무역 정책의 역사’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미국 포린어페어스 등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2022~2023년 전미경제사(史)학회 회장을 지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이기도 한 그는 한국이 수출을 통해 성장한 과정을 그린 보고서 ‘은둔의 왕국에서 한강의 기적까지’를 2021년 발표했다.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