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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에서 빚어낸 포도(Grapes of the rising sun)’(영국 주류 전문 매체 디캔터)
최근 니혼슈(일본주), 위스키 등 ‘장인이 빚은 예술’이란 찬사를 받아온 일본 술 반열에 새로운 주종(酒種)이 떠오르고 있다. 바로 일본산(産) 와인이다. ‘떠오르는 태양’은 서양인들이 일본을 부르는 별칭이기도 하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와인 시상식 영국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드(DWWA)’에서 최고상 ‘베스트 인 쇼(Best in Show)’의 영예는 일본 주류 회사 산토리가 만든 ‘도미 고슈(登美甲州) 2022’에 돌아갔다. 포도 재배에서 양조까지 100% 일본에서 생산한 와인이 이 시상식 최고상을 받은 건 최초였다. WEEKLY BIZ는 과거 ‘비주류 와인 산지(産地)’로 여겨졌던 일본이 오늘날 서양 와인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비결을 분석했다.
◇와인 역사 150년의 저력
“‘일본산 와인을 만들어내겠다’던 역대 선조로부터 오늘날 우리에 이르기까지 오랜 도전이 결실을 보게 돼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산토리 측은 지난해 DWWA 최고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수상 소감에도 등장한 일본산 와인의 역대 선조는, 메이지 시대 주류 업자 가미야 덴베에(1856~1922)를 말한다. 1880년대 도쿄 아사쿠사에서 양주 전문 술집을 운영하던 가미야는 수입 와인을 일본인 입맛에 맞춰 달콤하게 개량한 상품이 당시 성행하자 ‘아예 일본산 와인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품었다. 이 꿈은 결국 1903년 일본 최초 양조장인 우시쿠샤토 양조장 건립으로 이어진다. 우시쿠샤토 아이타 마사키 사업추진부장은 지난 4일 WEEKLY BIZ에 “가미야는 데릴사위였던 고바야시 덴조를 프랑스 최대 와인 산지인 보르도로 유학 보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법을 배우게 했고, 그렇게 3년 뒤 돌아온 고바야시와 함께 현재 우시쿠시에 양조장을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미야 외에도 19세기 말 활동한 주류 업자 쓰치야 다쓰노리와 다카노 마사나리, 가와카미 젠베이 등이 오늘날 일본산 와인 역사의 선구자들로 꼽힌다. 쓰치야, 다카노는 1877년 일본산 와인 생산의 꿈을 품고 ‘다이닛폰 야마나시 포도주 회사’를 차렸던 인물이다. 가와카미는 1927년 고슈와 함께 현대 일본산 와인을 대표하는 고유 포도 품종 ‘무스카트 베일리 A’를 처음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땅의 맛’이 깃들다
일본산 와인이 세계적 수준으로 오른 건 150년 와인 역사도 뒷받침했지만, ‘땅의 맛’도 한몫했다. 와인 원료인 포도는 대개 척박한 땅일수록 생산에 유리하다고 평가된다. 포도나무는 척박한 땅일수록 더 깊게 뿌리내려 생명력을 발휘하고, 맺히는 포도 한 알 한 알에 더 강렬한 풍미를 담게 된다고 한다. 자갈층이 두껍기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이 세계 대표 와인 산지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간 일본 땅은 포도 산지로 주목받지 못했다. 일본 경작지는 구릉지(丘陵地)로 배수가 잘되고 비옥한 화산성 토양이 분포한 지역이 많아 와인용 포도 생산에 유리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포도 생산엔 불리하다던 땅이 최근 마치 역발상 전략처럼 되레 강점으로 여겨진다. 전문가들은 포도 재배에 유리하지 않다고 여겨진 일본 토양이 역으로 서양산 와인과 차별점을 주는 일본 와인만의 특별함이 됐다고 설명한다. 2010년 홋카이도에 양조장을 차린 소가 다카히코(53)씨는 “미생물과 균이 풍부한 균형 잡힌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엔 (서양산과 다른) 독특한 감칠맛이 가미된다”고 했다. 이러한 특성이 오랜 기간 서양산 와인 맛에 적응된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영국 디캔터는 “습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일본산 와인엔 특유의 테루아(terroir)를 고스란히 담아낸 미묘한 매력이 존재한다”고 했다. 테루아는 포도를 생산하는 데 영향을 주는 토양, 기후 등 조건을 통틀어 일컫는 프랑스어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다 지난해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에 새 양조장을 차린 에티엔 드 몽티유씨는 NHK에 “(일본산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독특한 ‘짠맛’을 낸다”고도 했다.
◇일본 고유종 ‘고슈’로 빚어내다
일본 특유 ‘땅의 맛’이 서양과 다른 독특한 맛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면, 일본 와인의 기본 바탕은 야마나시현 고슈시(市) 고유종 포도 ‘고슈’가 맡았다. 오늘날 일본 양조용 포도 대표 주자인 고슈는 일본산 와인의 성장 기반을 두 세기 전부터 다져 온 든든한 초석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DWWA 최고상의 주인공 산토리 ‘도미 고슈 2022’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포도로 양조했다.
야마나시현 당국에 따르면 고슈는 약 1300년 이전부터 야마나시현 일대에서 재배돼 왔다. 고슈가 와인 양조에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 무렵. 1877년 야마나시현에 다이닛폰 포도주 회사가 설립되면서다. 일본 전문가인 금동우 한화생명 도쿄사무소장은 “다이닛폰 포도주 회사는 설립 2년 뒤 고슈 원료 100%로 만든 일본산 와인을 탄생시켰지만 당시 양조 기술의 부족과 대다수 일본인이 와인에 생소하다는 한계에 부딪혀 설립 10년도 되지 않아 파산을 맞았다”며 “하지만 고슈는 약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양조용 포도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품종으로 일본산 와인 선구자들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했다.
지구온난화 영향을 덜 받는 포도 품종이란 점도 최근 ‘고슈’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금 소장은 “고슈는 높은 온도에도 당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아 와인 생산에 최적이란 평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최적에 가까웠던 세계 주요 포도 품종들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당도 변동이 잦아지면서, 기온 변화에 무던한 고슈가 주류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 했다.
◇어느 음식과도 찰떡궁합
일본산 와인만의 폭넓은 ‘페어링(pairing·궁합)’ 능력도 세계 와인 업계가 일본을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산 와인은 특유의 ‘깨끗한 맛’ ‘가벼운 맛’으로 유명한데, 비교적 맛이 강하고 깊은 서양산 와인에 비해 음식의 맛을 해치지 않아 부담 없이 식사와 곁들이기 좋다는 뜻이다. 이에 지난해 11월엔 덴마크, 미국 뉴욕 등에서 온 요식업 관계자들이 대거 홋카이도 요이치의 양조장을 찾아 와인을 시음했다고 NHK가 전했다.
여기에 ‘버블 경제기(1980년대)’를 전후로 빠르게 추진된 ‘일식의 세계화’ 역시 일본산 와인의 성장에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일본무역진흥기구에 따르면 일본 와인 수출량은 2019년 133kL(킬로리터)에서 2020년 237kL로 급속하게 성장하는 추세다. 정영경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사무국장은 “2013년 일식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등 전 세계에 일식 문화 보급이 크게 확장된 상황에서 세계인들의 시선이 ‘일본산 와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향후 10~20년 뒤 국제 와인 시장에서 일본산 와인의 입지를 더 기대하게 되는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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