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스내그(Snag)'의 청바지 광고./스내그 홈페이지 캡처

“저는 공중보건의입니다. 비만은 당신 정체성의 일부가 아니라 치료해야 할 질병입니다. 스내그(Snag)와 같은 패션 브랜드는 비만인 사람들을 돈벌이 기회로 보는 것 같아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자기 몸 긍정주의)’ 광고는 흡연 광고나 도박 광고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적·개인적 피해 측면에서 말입니다.”

영국 BBC가 지난달 15일 ‘모델이 너무 뚱뚱해…하루 100건 항의받는 옷 브랜드’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자,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선 찬반 양론이 폭발하듯 부딪쳤다. “인구통계에 맞춰 큰 사이즈에 옷을 만들었을 뿐 ‘비만’을 광고하는 게 아니잖느냐” “뚱뚱한 사람도 옷은 사야지 않느냐” 등과 같은 반응도 있었으나 “거식증 있는 사람을 위해 뼈만 앙상한 모델이 옷 광고를 할 필욘 없듯이 비만인 사람을 위해 굳이 뚱뚱한 모델을 쓸 필요는 없다”는 의견 등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뚱뚱함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던 패션계의 ‘보디 포지티브’ 트렌드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만은 ‘병’ 인식에…위고비까지

왜 이렇게 패션계 분위기가 달라졌을까. 비만이 질병이란 인식이 커진 데다 과체중 모델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인 평가가 늘면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패션 모델계의 ‘신체적 다양성 혁명’은 끝난 듯하다”며 “2021년 팔로마 엘세서가 미국 보그 표지에 등장한 최초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되면서 정점을 찍었던 신체적 다양성은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며 거의 매 시즌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켈빈클라인 광고/켈빈크라인 홈페이지 캡처

체중 감량 약물의 등장이 ‘과체중 모델 줄이기’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오젬픽과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가 인기를 끌면서 살 빼기도 상대적으로 쉬워졌고, 큰 사이즈 의류에 대한 수요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다. 인공지능(AI) 기반 시장조사기관 임팩트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용 셔츠의 소형 사이즈(XXS·XS·S)는 2022년 대비 12% 증가한 반면, 대형 사이즈는 10.9% 감소했다.

◇XL 사이즈, 0.3%로 확 줄어

당초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빼빼 마르고 키 큰 모델을 고집하는 패션계 관행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다. 패션계에서 마른 체형이 ‘미(美)의 기준’으로 굳어지면서 과도한 다이어트가 유행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면서다. 이에 몸무게나 체형과 상관없이 자기 몸을 사랑해야 한다는 ‘보디 포지티브’를 지지하기 위해 과체중 모델을 앞세워 제품을 홍보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나이키는 2017년 모델 팔로마 엘세서 등과 손잡고 XL~XXXL 사이즈 여성복을 선보였고 일부 매장에 과체중 마네킹을 배치했다. 미국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은 2018년 패션쇼를 폐지하고 과체중 모델을 기용하기 시작하는 등 한때 패션업계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영국 나이키 매장에 있는 과체중 마네킹의 모습./나이키 제공

그러나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며 이런 분위기도 재반전을 맞았다는 해석이다. 보그비즈니스가 지난달 공개한 ‘2025년 가을/겨울 사이즈 포용성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봄 뉴욕·런던·밀라노·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 등장한 의상 8703벌 가운데 중간 사이즈(한국 기준 M~L)는 2%, 플러스 사이즈(XL)는 0.3%에 불과했다. 지난해 봄 시즌 패션쇼의 4.3%와 0.8%에서 반 토막 넘게 쪼그라든 셈이다. 실제로 패션 업체들도 과체중 모델의 기용을 줄이는 추세다. 캐나다 매체 글로브앤드메일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 사이에선 이미 일거리 예약이 끊겼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만 치료제가 등장하고 자기 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특히 서구권에서는 ‘보디 포지티브’에 대한 지지와 함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급격하게 늘어난 측면이 있어 감소세도 가파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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