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럭셔리 하우스 에르메스를 이끄는 악셀 뒤마(Dumas)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서울을 찾았다. 지난 3일 서울 잠실 한강공원에서 열린 ‘에르메스 2025 여름 남성복 컬렉션’ 행사에 참석하러 온 것이다. 그는 1837년 에르메스를 창업한 티에리 에르메스의 6세손이다. 2003년 에르메스에 합류한 후 보석·가죽 제품 대표직을 거쳐 2013년부터 CEO로서 13년째 에르메스를 이끌고 있다. 해외 매체들까지 취재에 나설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 속에서 WEEKLY BIZ가 뒤마 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뒤마 회장이 국내 매체와 인터뷰하기는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지리적 균형과 제품군 다각화’로 위기 넘어”
에르메스는 불황마저 이긴 브랜드다. 세계 명품 시장이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중에도 지난해 151억7000만유로(약 24조30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13%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경제 불안과 중국 시장 침체 등으로 지난해 구찌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그룹 매출이 전년 대비 12% 감소하고, 루이비통을 소유한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매출도 2% 감소한 데 비해 압도적 호실적을 낸 셈이다.
-최근 명품 업계 불황에도 매출 타격을 받지 않은 비결은.
“타격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른 회사들보다 늦게 타격을 받고 빨리 회복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니 2001년 9·11 테러를 시작으로, 최근 ‘관세 전쟁’까지 2년에 한 번꼴로 대형 위기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나는 전 세계가 ‘뷰카(VUCA·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의 영문 첫 글자를 합친 신조어)’ 시대를 맞았다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이 말이 최근 일련의 위기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메스를 위기에 강한 그룹으로 만들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썼나.
“(투자 포트폴리오를 짤 땐) 특히 지리적 분산 투자와 제품군 다각화를 중요하게 따졌다. 특정 지역에 경제적 위험이 닥쳐도 이 충격을 완화하고 글로벌 성장 기회를 이용하는 전략을 썼다는 얘기다. 이에 프랑스를 기본으로, 한국과 중국, 미국에도 투자한다. 또 가죽 제품, 신발, 보석 등 16제품군을 다양하게 개발해 특정 제품만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본질은 장인 정신”
명품 브랜드 가운데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는 에르메스를 두고 “다른 리그에서 뛰고 있다”(JP모건)는 평가까지 나오는 건, 장인이 생산 과정에 항상 참여한다는 차별화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에르메스는 이를 바탕으로 2027년엔 매출 200억유로를 달성해 루이비통을 제치고 럭셔리 업계 최대 브랜드로 올라설 것이란 예상(시티그룹)까지 나온다.
-‘퇴임 전 100억유로 매출’이란 당초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LVMH도 넘겠다는 새 목표가 생긴 건가.
“사실 나는 LVMH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LVMH를 넘어서는 게 내 목표도 아니다. 내 일과는 장인들을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에르메스 직원 중 장인이 가장 많다(2만여 명 중 7000여 명). 이에(다른 브랜드와 비교하는 것보다)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품질 유지를 최우선으로 한다. 우리가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를 실천하는 기업이 아직은 우리뿐이라고 생각한다.”
-럭셔리 이미지를 위해 가격을 올린다는 지적도 있다.
“조금 도발적으로 말하자면, 여타 브랜드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기도 한다. 제작 기법, 소재의 아름다움 등 많은 게 다르다. 다른 브랜드의 일부 가방 판매가가 에르메스 가방의 생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에르메스는 피에르-알렉시 뒤마 총괄 아트 디렉터가 임원진을 겸임하며 회사의 주요 결정에 참여하는데, 이런 방식은 에르메스가 유일하다. 에르메스에서는 창작이 모든 것의 중심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격만 올리고 제품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그건 럭셔리가 아니다’라고 말해 왔다.”
◇전 직원에게 4500유로 보너스까지
에르메스는 2010년 LVMH가 지분 매수 공격을 시도해 위기를 맞았다. 당시 에르메스 지분은 전 세계 가문 사람 100여 명에게 분산돼 있었는데, 에르메스는 이들에게서 지분 50.2%를 모아 지주회사를 만들고 오너 경영 회귀를 선포했다. 이때 구심점 역할을 한 이가 악셀 뒤마 회장이다.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뒷얘기는.
“당시 정말 감동받은 건 (지분을 모으는 데 필요한) 동의서를 받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인의 금전적 이익보다는 에르메스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나의 뒤를 이을) 7세손들에게 개인보다 에르메스를 앞세우는 가문 정신을 교육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성공’이란.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웰링턴 공작은 ‘패전을 제외하고 승리만큼 우울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많은 병사와 동료의 희생이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취임한 이래 성공적인 업적도 많았지만, 모든 게 직원들의 노력과 열정 덕분에 가능했다. 해서 나는 직원들이 ‘에르메스에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도록 한다. 에르메스는 기업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나눠 주기도 한다. 올해는 에르메스 전 직원에게 직급과 관계없이 보너스 4500유로를 지급했다. 모든 열정 넘치는 직원은 가족과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에르메스를 ‘가족들(families)’ 기업이라 한다. 에르메스의 성공 뒤에는 인간적인 여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