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통의 미 대통령 후보 부인들 간의 ‘쿠키 레시피 경연’이 올해 대선에선 사라질 전망이다. 더 맛있는 쿠키를 만든 이의 남편이 줄곧 백악관 주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 경연은 ‘미국 대선의 전초전’ ‘퍼스트 레이디 간의 대선 대리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 행사를 주관하던 한 여성잡지가 작년 말 사업을 종료하면서 올해부터는 이 경연을 볼 수 없게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1일(현지 시각) “올해 미 대선에서 더는 대통령 후보 부인들 간의 쿠키 레시피 경연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행사를 이끌던 미 여성잡지 패밀리 서클(Family Circle)이 작년 12월 성과 부진 등을 이유로 사업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경연은 1992년부터 2016년 대선까지 총 7번 열려 5번의 결과가 실제 남편들의 대선 승패와 맞아떨어져 또 하나의 ‘대선 지표’가 됐다. 경연은 패밀리 서클이 각 후보 부인들 간 레시피를 소개하고 이 잡지의 구독자들이 투표를 통해 승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시작은 1992년 당시 재선에 도전하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와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인 힐러리의 대결이었다. 당시 힐러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변호사로서의 커리어 우먼 경력을 두둔하며 “난 집에서 쿠키나 굽고 차나 마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결심한 건 내 직업을 충실히 행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당시 대중정서상 전업주부 유권자층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때 패밀리 서클이 논란을 기회로 삼아 대통령 후보 부인들 간 쿠키 레시피 경연을 기획했다. 힐러리는 논란을 무마시키기 위해 흔쾌히 경연에 참가했다.
결과는 뜻밖에 전업주부인 바버라를 무찌른 힐러리의 승리로 돌아갔다. 당시 힐러리는 요리 잘하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비법을 전수받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오트밀 초콜릿 칩 쿠키’를 개발해 바버라의 ‘초콜릿 칩 쿠키’를 이겼다. 데비 월시 미국여성정치센터 이사는 “성취를 이룬 커리어우먼이 되는 것과 쿠키를 굽는 것은 완전 별개의 일이었다”고 평했다. 힐러리는 1996년 남편의 재선 도전 때도 유사한 레시피로 승리했다.
‘아들 부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도 2000년과 2004년 모두 이 경연에서 승리해 남편의 선거 승리를 도왔다. 로라는 2000년엔 ‘텍사스 카우보이 쿠키’, 2004년엔 ‘오트밀 초콜릿 쿠키’를 선보여 민주당 후보 부인들을 제쳤다.
경연 결과가 실제 대선과 맞지 않게 된 건 2008년 대선부터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부인 미셸은 ‘쇼트 브레드 쿠키’를 내세워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부인 신디가 만든 ‘오트밀 버터 스카치 쿠키’에 맞섰으나 패했다. 4년 후 절치부심한 미셸은 기존 레시피를 버리고 두 딸의 대모(代母)로부터 비법을 전수 받아 새 레시피를 개발했다. 그 결과 호두와 각종 초콜릿 칩이 들어간 회심의 ‘화이트 앤 다크 초콜릿 칩 쿠키’를 선보여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의 부인 앤 롬니의 ‘오트밀 엠앤엠즈 쿠키’에겐 승리를 거뒀다.
2016년 경연도 대선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다. 당시 퍼스트 젠틀맨으로선 처음으로 경연에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부인 멜라니아가 맞붙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과거 부인의 레시피를 그대로 차용해 경연에 나섰으나 멜라니아의 ‘별 모양 설탕 쿠키’를 제쳤다. 그러나 실제 대선 승리는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에게 돌아갔다.
일부 경연에선 레시피 표절 의혹이 일기도 했다. 2008년 대선 당시 신디 매케인의 ‘오트밀 버터 스카치 쿠키’가 시중에 나온 제품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는 표절 논란이 있었다. 바버라 부시는 2015년 회고록에서 자신과 함께 살던 사람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 뒤늦게 고백하기도 했다.
한편 올해 대선에 나선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아내 질 바이든이 멜라니아에 맞설 쿠키 레시피를 만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질은 지난 2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단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면서 “나는 감자튀김을 좋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