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서방의 제재와 빅테크 기업들의 이탈로 러시아 고급 IT 인력의 대규모 해외 도피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전자통신협회는 IT 기술자 5만~7만명이 해외로 도피했으며 앞으로 10만여 명이 추가 출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난달 러시아 하원에서 밝혔다.

또한 해외 이주를 돕는 비영리단체인 ‘OK러시안’은 전쟁 이후 3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인들이 떠났다고 추정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IT업계 종사자라고 OK러시안 공동 설립자 미티아 알레쉬코프스키가 WP에 밝혔다.

알레쉬코프스키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 총리가 기술자들에게 러시아에 남아 달라고 간청했다”면서 러시아 정부가 기술자들에게 ‘애플이 러시아를 떠난다고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러시아의 애플 스토어를 만들 것이다’라는 식으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이런 탈출 러시를 막기 위해 IT 기업들에 세금 감면, 규제 완화를 제공하는 전례 없는 인센티브 방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IT 근로자들에겐 향후 3년 동안 주택 보조금 지급, 임금 인상, 소득세 면제 등을 약속했으며 군복무에 면제라는 특혜까지 부여했다.

러시아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IT 인력의 러시아 엑소더스를 막기는 역부족인 모양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르면 향후 몇 주, 길면 몇 달 안에 새로운 IT 종사자들의 러시아 탈출 러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럴 경우,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급 인력 탈출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민정책연구소의 진 바탈로바는 “1917년은 러시아 한복판에서 벌어진 내전 때문에 탈출이 벌어진 것이나 이번엔 러시아 외부 사태란 점이 다르다”고 했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 IT 기업들의 이전을 돕는 회사를 운영하는 미하일 미진스키는 전쟁 이후 러시아 고객이 20배 증가한 200여 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고객사 규모도 100여명부터 1000명까지 다양하다. 그는 “지금까지 이런 사태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자사 제품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애플. /애플 러시아 홈페이지

이 같은 인재 유출은 서방의 제재와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서방 빅테크 기업들의 사업 축소 혹은 종료 때문이다. 이에 소규모의 러시아 기술 회사까지도 자국을 떠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얀덱스와 같은 러시아 주요 기업까지도 자국을 탈출하는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얀덱스의 한 관계자는 최근 엔지니어들이 대거 이전한 아르메니아·조지아·터키에 사무실을 신설하거나 증설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WP에 전했다. 그는 “러시아 엔지니어들이 뛰어난 편이라 그들이 페이스북이나 구글에 이직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방의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젊은 IT 인력들은 코로나 시대에 국제적 원격 근무가 이미 흔한 상태여서 서방 국가의 취업 비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아닌데다가, 그들이 러시아에 남을 경우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휘말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느끼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터키로 도피한 러시아 출신 IT 기술자 막심 넴케비치는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보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게 아니라면) 푸틴은 IT 전문가들이 러시아를 떠나는 것을 막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도 북한처럼 될까봐 두렵다”면서 “서방 세계와의 모든 연결을 끊고 중국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고립될 것이며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탈출 이유를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도 숙련된 IT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자국의 부족한 IT 인력을 50만~100만명 사이로 평가했으며, 2027년까지 200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탈출 러시로 인력난이 심화할 것이라고 W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