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베트남 다낭의 한 해변. 미국과 베트남 군인들이 정복을 입고 도열한 가운데 성조기로 덮인 상자가 베트남 쪽에서 미국 쪽으로 전달됐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기간(1964~1973) 숨진 신원 미확인 유해를 돌려보내는 송환식이었다.

4월 19일 베트남 다낭에서 신원 미확인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DPAA

트래비스 월터 미군 중령과 응우옌 바 땅 베트남군 장군이 송환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1975년 4월 북베트남이 미군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을 무력 병합하며 전쟁이 끝난 지 50년 만에 무명용사들이 귀향길에 오르게 됐다. 미군의 베트남전 신원 미확인 전사자는 1573명이다. 이번에 봉환되는 유해들은 하와이의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검식 시설에서 신원을 확인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4월 19일 베트남 다낭에서 베트남전 신원 미확인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행사가 열리고 있다. /DPAA

미국은 1964년 8월 자국 구축함이 북베트남군의 어뢰 공격을 받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참전해 1973년 철수할 때까지 270만명을 파병했다. 이 중 5만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은 압도적 화력에도 북베트남과 베트콩(남베트남 공산 게릴라)의 공세에 고전했다. 격렬한 반전 운동으로 미국 사회도 극도로 분열됐다.

4월 19일 베트남 다낭에서 베트남전 신원 미확인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행사가 열리고 있다, /DPAA

베트남전 당시 현지에 신참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케네스 퀸(83) 전 캄보디아 주재 미국 대사는 최근 미국 외교관협회보 기고에서 “파병 미군 사이에 ‘베트남에서 마지막으로 죽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봤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참전 군인 상당수가 귀향 후에도 반전 세력의 비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후유증과 싸워야 했다. 참전 미군의 고통은 ‘디어 헌터’(1978) ‘지옥의 묵시록’(1979) 같은 작품의 소재가 됐다.

4월 19일 베트남 다낭에서 베트남전 미군 신원 미확인 전사자 유해 송환 행사가 열리고 있다. /DPAA

실종 미군의 존재는 전후 미국과 베트남이 관계를 개선하는 가교 역할을 해줬다. 베트남은 1988년 미국의 유해 발굴을 허용했고, 1991년부터 발굴이 본격화했다. 이를 계기로 접촉면이 넓어진 두 나라는 1995년 국교를 수립했다. 지금까지 750여 구의 유해가 신원이 확인돼 고향의 유족 품으로 돌아갔다. 이번 송환은 베트남이 대대적 기념 행사를 준비 중인 통일 50주년(4월 30일) 및 양국 간 관세 협상이 추진되는 시점에 열렸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를 거론하며 한국의 두 배 수준인 46%의 상호 관세를 책정했다.

4월 19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베트남전 미군 신원 미확인 전사자 송환 행사 참가자들이 함께 모였다. /DP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