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다 아는 것 같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 정치, 외교, 경제 이슈를 탐구합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5년간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홍위병 시진핑
정치운동식 캠페인 뒤에 숨은 문화대혁명의 그늘
중국에서는 지난달부터 음식 낭비 줄이기 대소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811음식 낭비 현상이 가슴 아프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알알이 모두 땀의 대가라는 걸 누가 알겠는가하고 한 말씀 하신 덕분이죠.

황제의 한 마디에 갖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식당 입구에 설치된 체중계로 몸무게를 재고, 몸무게에 따라 음식을 주문하게 하는 식당까지 나왔죠. 당국은 TV 먹방 프로그램이나 배달앱이 음식 낭비를 부추기지 않는지 감시하겠다고까지 합니다.

👉 잔반 줄이기 소동..."음식 낭비 습관 못 고치면 공개 비판"

공산당 상하이시당은 음식 낭비가 고쳐지지 않으면 공개 비판까지 하겠다고 해 “지금이 문화대혁명 때냐는 말이 나왔죠.  상하이시당은 816일 통지문에서 “감독과 권고에도 낡은 관습이 고쳐지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폭로해 비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허베이성의 한 식당에 '음식물을 남기지 말고 다 먹자"는 내용의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신화통신
중국인들은 손님을 초대해 식사를 할 때 체면을 중시합니다. 이런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가 성옌(剩宴)’이에요.  다 먹은 뒤에도 요리가 그득하게 남을 정도의 식사 자리를 뜻합니다. 당연히 낭비되는 음식이 어마어마합니다. 한해 버려지는 음식물이 3500만톤으로, 식량생산량의 6%나 돼요. 식당의 잔반율은 평균 11.7% 인데, 손님 접대 자리에선 그 비율이 38%로 올라갑니다. 주문한 음식의 절반 가까이를 남기는 셈이죠.

이런 문화를 개선하자는 데 반대할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문제는 관이 나서서 신고하도록 하고 감시하고안 고치면 공개 비판을 하겠다고 윽박지르는 거친 방식이겠죠재미 중국인 학자 우줘라이(吳祚來)는 “음식 좀 더 시켰다고 범죄가 되는 것도 아닌데공개 폭로를 해서 어쩌자는 것이냐며 “이렇게 수준 낮고 거친 정치 운동 방식으로는 잔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치운동식 캠페인은 낯설지 않죠. 2017년 말에도 시 주석이 화장실 혁명을 선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죠.
👉홍위병 경험에서 나온 정치운동식 캠페인
 
이런 행태가 반복되는 데 대해 시 주석이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겪은 문혁의 경험이 머리 속에 뿌리 깊이 남아 부지불식간에 드러난다는 것이죠.

홍위병은 여러 파벌이 있는데, 시 주석은 태자당(공산당 혁명 원로와 고위 간부의 자제)으로 구성된초기 홍위병에 속했죠.  중국말로는 라오홍웨이빙(老紅衛兵)’이라고 합니다. 

1966년 홍위병 운동 초기에 등장했던 라오홍웨이빙은 베이징 지역 교사들에 대한 가혹한 홍색 테러로 악명이 높습니다. 다수의 교사가 잔혹한 구타와 모욕, 비난에 시달렸고 상당수가 구타로 사망하거나 자살했어요. 하지만 고위 간부인 자신의 아버지들도 곧 홍위병 주류인 조반파(造反派)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됩니다. 그때부터 홍위병 주류에서 밀려났죠. 

문화대혁명 당시 목에 '반당분자'라는 팻말을 걸고 홍위병들에게 끌려 다니는 시진핑 주석의 부친 쉬중신(1913-2002) 전 부총리. 이 때문에 시 주석은 그동안 문화대혁명의 피해자로 여겨져 왔지만 실상은 그 자신도 홍위병 그룹의 일원이었다.  /중국 인터넷
시 주석의 중학교 동창인 프로기사 녜웨이핑 9단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1968년 들어 홍위병은 여러 파벌이 생겨 늘 패싸움을 벌이곤 했는데, 나는 소요파(홍위병 운동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파)로 활동에 참가하지 않거나 기껏해야 가서 함께 노는 정도였다. 그때 고위간부 자제 학교인 팔일(八一)중학이 해체되면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진핑과 류웨이핑(劉衛平·개국 장군 류전의 아들)이 내가 다니던 베이징 25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우리 셋은 모두 아버지가 반동분자여서 좋은 친구가 됐다. 둘은 학교 밖 라오홍웨이빙과 자주 연락하고 지냈는데, 그들의 영향으로 나도 그쪽으로 기울었다.”

👉시 정권 핵심은 홍위병 출신 태자당
 
젊은 시절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세대가 중국 최고 지도부에 처음 진입한 것은 후진타오 시절입니다. 후진타오 전 주석, 원자바오 전 총리 등은 문화대혁명 당시 대학생인 세대죠. 이어 당시 중고생으로 홍위병을 경험한 태자당들이 지금의 시진핑 주석 체제를 구성합니다.

두 세대는 모두 홍위병이었지만, 문혁을 보는 시각은 판이하죠. 문혁 당시 대학생이었던 세대는 문혁을 반성하고, 비교적 개방적이고 유연한 체제를 지향합니다. 반면, 지금의 집권세력인 태자당 출신 홍위병들은 강한 전체주의적 성향에 문혁을 그리워하는 정서마저 남아 있죠. 보시라이(博熙來) 전 충칭시 서기가 2012년 대대적인 홍가(紅歌·공산당 혁명 가요) 운동을 펼쳤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전체주의, 종신집권 낳은 문혁식 사고
 
 홍색 귀족인 이들은 강한 특권 의식과 주인 의식으로 무장해 있죠. 홍위병 시절부터 아버지가 영웅이면 아들도 사내대장부고, 아버지가 반동이면 아들은 상놈이다’ ‘아버지가 정권을 만들고, 아들이 이어받는다는 말을 대놓고 했습니다. 첸리췬 전 베이징대 교수는 2012년에 쓴 글에서 이들은 문혁 이후 현대적 교육을 받고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잠시라도 공산당 일당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성향이라며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깡패짓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적잖다고 했죠.

문혁이 발발한 1966년 당시 시진핑 주석은 중1로 과격한 홍색 테러에 가담했을 것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민한 청소년기에 체험한 마오쩌둥식 정치와 문화대혁명은 그의 정치적 사고에 뿌리 깊이 자리를 잡았지요. 집권 이후 강화된 전체주의 체제, 종신 집권과 개인 숭배 등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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