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유럽연합(EU) 정상들이 14일(현지 시각) 열린 화상 정상회의에서 시장 개방, 인권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양측이 올 연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던 중국·EU 간 포괄적 투자 협정이 핵심 의제였는데 회의에 참석한 유럽 정상 3명이 인권과 무역을 앞세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압박했다. 시 주석도 맞받아쳤다. 이날 양측의 공동 성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는 시 주석,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EU 순회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참여했다. 회의는 시 주석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두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4일(현지 시각) 열린 중국과 유럽연합(EU) 화상 정상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EU 순회 의장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가 참석했다. /EPA 연합뉴스

하지만 비공개 회의가 끝나고 일부 공개된 발언에는 상대에 대한 압박과 경고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만큼 회의 분위기가 냉랭했다는 의미다. 미셸 상임의장은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은 무역 상대국(player)이지 무역을 벌일 놀이터(playing field)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더 많은 공정성을 원한다”고 했다. 투자·무역에서 중국이 공정한 정책을 펴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언론을 인용해 "메르켈 총리는 중국이 시장 개방을 뜻하는 투자 협정을 정말 원하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시 주석을 압박했다”고 전했다.

EU는 이날 중국 인권 문제도 제기했다. 미셸 상임의장은 “(시 주석에게) 홍콩 주민의 안전, 중국 신장이나 티베트 소수 민족 대우에 대한 우려를 거듭 제기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EU가 제기한 인권 문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길게 반론을 폈다. 중국 관영 매체에 따르면 그는 “홍콩과 신장 문제의 본질은 중국의 국가 주권, 안전, 통일을 보호하는 문제”라며 “중국에서 불안정과 분열을 일으키거나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인권 교사(教師爺)’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이중 잣대(자국 인권에 눈감고 상대방 인권을 비난하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했다.

시 주석은 유럽의 화웨이(중국 통신기업) 배제나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고장을 날렸다. 그는 “최근 5G(5세대 이동통신), 외국 투자 심사, 정부 조달, 경쟁 정책에서 (EU의) 방향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다”며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리를 보장하길 원한다”고 했다. 미국은 유럽 각국에 화웨이 5G 장비를 쓰지 말라고 압박해왔다.

중국은 미국과 갈등이 커지자 외교력을 유럽에 집중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8월 말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5개국을 순방했고, 왕 부장이 귀국하자마자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스페인과 그리스를 찾았다. 하지만 무역, 인권 등의 각 분야에서 양측의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다.

중국이 홍콩 내 반중(反中) 세력을 감시·처벌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자 EU 의회가 강하게 비판했고, 독일, 프랑스는 홍콩과 체결했던 범죄인 인도 협정을 폐기했다. EU는 지난 6월 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외국 기업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고 인수·합병, 공공입찰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국영기업을 겨냥한 조치라는 평가다. 6월 말 열린 중국과 EU의 화상 정상회의도 공동 성명을 발표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그 갈등 기류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