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황제의 딸’로 유명한 중국 국민 여배우 자오웨이(趙薇·45)의 작품과 극중 배우 이름이 중국 인터넷에서 일제히 사라진 일이 요즘 중화권 최대 화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죠.

◇국민 여배우 흔적 지우기

시작은 8월26일 밤이었습니다. 중국 주요 동영상 플랫폼에서 자오웨이가 감독하거나 제작한 영화·드라마 작품이 줄줄이 삭제됐죠. 그가 출연한 ‘황제의 딸’ 등 유명 작품은 작품 자체를 내릴 수 없자 배우 명단에서 이름을 빼버렸습니다. 소셜미디어 계정도 정지됐죠.

단 하룻밤 사이에 14억 인구 중에 모르는 이가 없다는 국민 여배우의 흔적이 인터넷에서 사라진 겁니다. 탈레반이 부르카 쓰지 않았다고 여성을 총살한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행태죠.

중국 국민 여배우 자오웨이(오른쪽)와 그의 출세작인 드라마 '황제의 딸'의 한 장면. /바이두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는 뉴스가 없어요.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도 “아무런 설명 없이 자오웨이의 작품이 삭제됐다”고 썼더군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근황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 와인 농장으로 도피했다” “베이징에 억류돼 있다”는 등 억측이 난무합니다.

자오웨이는 8월29일 밤 인스타그램에 ‘가장 좋은 계절…아빠 엄마와 함께 수다를 떠는데,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아주 좋다’는 글과 함께 사진 3장을 올렸다가 1시간 만에 삭제했는데, 행방을 짐작할만한 단서는 없었습니다.

자오웨이가 8월29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과 글. /자오웨이 인스타그램 캡처

중국 인터넷에는 자오웨이가 20년 전 무명 배우 시절 입었던 일본 욱일기 드레스 등이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글이 올라오는데, 신빙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보다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 사건에 연루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해요.

◇자산 10억 달러의 ‘여성 버핏’

자오웨이는 유명 배우이지만 ‘여성 버핏’이라고 불리는 중국 투자업계의 큰 손이기도 합니다.

2011년 영화·드라마 제작사 탕더픽처스, 2014년 마윈 회장의 알리바바픽처스 등에 투자해 수천억원의 차익을 남겼죠. 2008년 결혼한 사업가 출신 남편 황여우룽과 함께 10억 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2017년에는 페이퍼 컴퍼니를 동원해 시가총액 1조5000억원짜리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분 30%를 확보하려다 제지를 당한 적도 있죠. 중국증권감독관리위는 5년간 자오 부부의 증시 투자를 금지했습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자오웨이가 2015년 항저우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오웨이는 당시 알리바바픽처스의 주요 주주였다. /웨이보 캡처

중국 내에서는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의 비상장 주식을 보유한 게 문제가 됐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중국의 한 경제지는 작년 11월 “자오웨이가 모친 명의로 5억위안(약 900억원)어치의 앤트그룹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죠.

◇미래 내다봤던 리롄제와 궁리

자오웨이 사건은 작년 11월 앤트그룹 상장이 전격 연기되고 중국 당국이 디디추싱 등 빅테크 기업을 대대적으로 조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민간 투자자들이 비상장 주식 매입을 통해 국제 자본시장에서 큰 돈 버는 걸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시진핑 주석이 최근 공산당 중앙재경위 회의에서 공동부유론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핀테크기업 앤트그룹 상장 무산에 이어 중국 정부의 강도높은 반독점 조사를 받았던 알리바바그룹이 9월3일 중국 공산당이 추진하고 있는 공동부유 달성을 돕기 위해 2025년 전까지 1000억 위안(약 18조원)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웨이보 캡처

공동부유론은 시 주석 집권 직전인 2011년에도 나온 적이 있는 구호이죠. 하지만, 인구 14억의 시장경제 대국이 성장 동력을 잃지 않으면서 단기간에 양극화의 갭(차이)을 줄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부자 때려잡기’를 하는데, 자오웨이가 제대로 걸려든 거죠.

이런 흐름을 내다본 많은 중국 부자들이 시 주석 집권 전에 재산을 정리해 해외로 떠났습니다. 중국 액션 스타 리롄제, 세계적인 여배우 궁리 등도 이 시기에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해 중국을 떠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