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중국 헤이허(黑河)와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 사이에 길이 1.2㎞ ‘헤이룽장 대교’가 정식 개통했다. 중·러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에 차량이 오가는 다리가 놓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통식에서 교역화물을 실은 트럭이 처음으로 다리 위를 지나고 있다./AFP 연합뉴스

중국 헤이허(黑河)와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양국의 국경 무역 도시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200만t의 화물과 60만명 가까운 사람이 오갔지만 두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무르강(중국명 헤이룽장)은 큰 장애물이었다. 여름에는 배, 겨울에는 얼어붙은 강 위에 가교를 만들어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다. 그마저도 1년 중 120일은 기상 때문에 왕래가 불가능했다.

지난 10일 두 도시 사이에 길이 1.2㎞ ‘헤이룽장 대교’가 정식 개통했다. 중·러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에 차량이 오가는 다리가 놓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통식 때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각각 트럭 8대가 다리를 건넜다. 중국 측 트럭에는 가전과 타이어, 러시아 트럭에는 콩기름, 목재가 실렸다.

이번 다리 개통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브로맨스’라고 불릴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양국 관계에 또 다른 기폭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년 365일 양국 무역이 가능해지면서 이 지역을 통한 화물 무역량은 2배, 인원 이동은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양국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시 주석은 15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헤이룽장 대교를 언급하며 “주권, 안전 등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계속 지지하고, 양국의 전략적 협력을 밀접하게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어떤 세력도 신장·홍콩·대만 등을 핑계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중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번 통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중·러 정상 간 두 번째 통화다.

중국 헤이허와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를 잇는 ‘헤이룽장 대교’. 중·러 국경을 따라 흐르는 아무르강(중국명 헤이룽장)에 차량이 오가는 다리가 놓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 크렘린궁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이 시 주석의 69번째 생일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통화의 분위기가 “따뜻하고 우호적이었다”고 했다. 또 “시 주석이 외부 세력이 조성한 안보 위협 속에서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한 러시아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주목했다”고 밝혔다. 크렘린궁은 양국 정상이 “서방의 비합법적인 제재 정책의 결과로 조성된 국제 경제 상황에서 에너지·금융·산업·물류 등에 걸친 협력 확대에 합의하고, 군사 및 군사·기술 관계의 추가적 강화 문제도 논의했다”고 했다. 다만 중국 측 보도자료에는 군사 관련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러 정상의 통화에 대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정상의 우크라이나 방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방장관 회의에 앞서 러시아가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는 외교적 제스처”라며 “시진핑이 오랜 친구인 푸틴에게 충성을 보여줬다”고 했다.

아무르강에 다리를 놓자는 아이디어는 30여 년 전부터 나왔다. 지난 1988년 당시 소련(현 러시아) 아무르주가 중국 측에 다리 건설을 제안했다. 하지만 양측은 과거 국경을 놓고 전쟁까지 벌였던 앙금이 있었고, 중국은 미국과 마주한 태평양 연해 지역 경제 발전에 집중하면서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다 시진핑 주석 집권 후인 지난 2015년 다리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중국 헤이허-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 다리

중·러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동안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중·러는 헤이룽장 대교 이외에도 이곳에서 아무르강을 따라 800㎞ 아래쪽에 있는 중국 퉁장(同江)과 러시아 니쥬네렌닌스코예 접경에도 길이 2.2㎞의 철도 전용 다리를 최근 완공했다. 중국 측 연결 공사는 지난해 끝났고 러시아 측도 지난 4월 27일 러시아 구간에 대한 준공식을 열었다. 조만간 철도 운영이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리가 개통하면 헤이룽장성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가는 철길이 800㎞ 단축될 전망이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러시아는 철도를 이용해 철광석과 석탄, 비료, 목재를 중국에 수출할 예정”이라며 “새 다리는 국제적인 도전이 확대되는 가운데 중·러 경제 협력에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취임 후 자신보다 한 살 위인 푸틴 대통령과 지금까지 40차례 가까이 만나며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도 열어놨다. 시 주석은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 등 푸틴이 군사 행동에 나설 때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사주며 러시아의 뒷배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지난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던 중·러 무역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불안에도 올 들어 1~5월 작년 대비 28.9% 증가했다. 특히 중국의 러시아 물품 수입은 46%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