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스리랑카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사임을 선언한 고타바야 라자팍사(73) 대통령이 공군기 편으로 몰디브로 도주하는 일이 벌어졌죠. 스리랑카는 국가 부도로 식량, 에너지 수입이 끊겨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 일로 가장 입장이 곤란해진 나라가 바로 중국이에요. 중국은 인도양의 섬 스리랑카를 해상 일대일로(실크로드)의 교두보로 삼고 10여 년 전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가 ‘채무 함정’에 빠진 것이 결국 국가 부도 사태를 불렀다는 중국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죠.
중국 외교부와 관영 언론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중국은 스리랑카가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건 집권층의 무능과 부패가 주요인이라는 입장이더군요. “스리랑카 외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밖에 안 되는데, 서방 언론이 마치 모든 것이 중국 탓인 것처럼 악마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중국 돈 빌려 무리한 인프라 투자
스리랑카가 국가 부도 사태에까지 이른 데는 복잡한 요인이 작용했어요. 스리랑카는 도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대통령 집권기인 2000년대 후반부터 외채가 급격히 늘어납니다. 그는 2009년 ‘타밀 일람 호랑이 해방 호랑이(LTTE)’ 반군과 30년 동안 계속해온 내전을 종식한 국민 영웅이었죠.
내전이 끝나자 그는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에 돌입합니다. 중국, 인도 등 주변 강대국 사이에 양다리 외교를 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채(ISB)를 발행해 국제공항, 항만, 고속도로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했어요.
문제는 수요 예측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무리하게 인프라를 건설했다는 겁니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인프라 투자를 자신의 고향인 남부 함반토타에 집중한 것도 문제였죠.
함반토타항은 11억 달러 이상을 들여지었는데, 2012년 한해 이 항구로 들어온 화물선이 고작 34척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빌린 건설비를 갚기는커녕 운영 적자가 계속 누적돼 2017년 정부가 갖고 있던 항만 지분 80%와 99년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야 했죠. 당초 스리랑카는 인도에 함반토타항 개발을 요청했지만, 인도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함반토타에서 18㎞ 떨어진 마탈라 국제공항도 비슷한 처지에요. 2013년 개장 이후 수요 부족으로 적자가 누적됐고 2018년에는 취항 항공사가 하나도 없는 유령공항이 돼버렸습니다. 이 공항 역시 건설 자금을 중국에서 빌렸어요.
◇눈덩이처럼 불어난 외채
이렇게 현실성 없는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외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2005년 113억 달러였던 외채가 2010년 217억 달러, 2015년 439억 달러로 늘었습니다. 5년마다 배로 증가한 거죠.
외채 상환 조건도 점점 나빠집니다. 스리랑카가 저개발국이던 시절 세계은행, 일본 국제협력기구, 아시아개발은행 등으로부터 빌린 돈은 금리가 연 1% 이하에 상환기간이 25~40년에 이르는 우대대출이었죠.
그런데 2007년부터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상업 대출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2004년 전체 외채의 2.5%에 불과했던 상업 대출은 2019년 56%로까지 증가했어요. 상업 대출은 최고 이자가 연 6%에 달하고 상환기간도 5~10년으로 짧습니다. 중국에서 빌린 돈도 이런 상업 대출이었죠.
스리랑카는 5월19일 7500만 달러의 빚을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는데, 전체 외채 규모는 510억 달러 가량 된다고 합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외채 비중이 47%가량이고, 아시아개발은행(13%), 중국(10%), 일본(10%), 세계은행(9%) 등이 주요 채권국이에요.
스리랑카는 제조업 기반이 약하고 관광산업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인프라 투자를 하다 코로나 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거죠. 프로젝트의 현실성, 대출의 성격, 상환 조건 등을 보면 중국의 책임도 적잖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려울 땐 “나 몰라라” 지원 외면
스리랑카는 지난 6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중국에 10억 달러의 자금을 긴급 요청했어요. 하지만 중국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했습니다. 일대일로 참여를 설득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하다가 어려운 처지에 빠지자 나 몰라라고 외면을 한 거죠. 그나마 인도가 무역 신용 등의 형태로 10억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대일로에 참여했다가 부채 함정에 빠진 나라가 스리랑카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프리카 잠비아, 중동 레바논, 남아시아 파키스탄 등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스리랑카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면 그것이 선례가 돼 다른 나라에도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스리랑카가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 금융 협상을 할 때 채권국으로 참여해 문제 해결책임을 IMF와 스리랑카에 떠넘기겠다는 게 생각인 거죠. 일대일로의 추악한 민낯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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