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달 말 50개 주정부에 “10월 말, 늦어도 11월 1일까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준비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2일(현지 시각)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3일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을 콕 찍어 백신 보급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백신을 대선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CDC가 8월 27일 미 50주와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5개 대도시의 보건 당국자들에게 “10월 말~11월 초 의료진과 고위험군을 우선순위로 코로나 백신을 접종할 준비를 하라”는 서신을 발송했다고 보도했다. CDC는 백신 배포 시나리오도 상세히 제시했다.
CDC가 이 서신을 보낸 8월 27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확정하는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코로나 백신이 연말 이전에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앞서 미 식품의약국(FDA)도 “최종 3상 임상 시험을 완전히 마치지 않은 코로나 백신이라도 긴급 승인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현재 미국에선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등이 3상 임상 시험에 돌입했다. 그러나 3상 시험은 수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되며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백신 상용화는 빨라야 올 연말에나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판도를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의 깜짝 이벤트)’로 백신 확보를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이란 이름으로 총 7개 백신 개발을 전폭 지원해왔다. 그러나 전미과학공학의학한림원은 이 중 4개 백신 개발이 좌초할 것이란 보고서를 최근 냈다.
한편 미국을 비롯해 영국,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 등이 2021년까지 첫 생산 될 코로나 백신을 미리 싹쓸이하다시피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일 보도했다. 내년까지 생산 가능한 총 백신 분량은 40억 접종분에 불과할 전망인데, 이 강대국들이 입도선매 계약으로 최소 37억 접종분을 선점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각각 16억분, 4억분을 확보해 각각 인구 1인당 5회씩 백신을 맞을 수 있게 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백신면역연합 등은 공정한 글로벌 백신 보급을 내걸고 일명 ‘코백스(Covax) 이니셔티브’를 제안했고, 여기에 한국 등 172국이 참여한 상태다. 그러나 백악관은 지난 1일 “부패하고 중국에 편파적인 WHO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구속될 수 없다”며 코백스 불참을 선언했다. 중국도 “국내 공급 여력도 부족하다”며 발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