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연구실에서 실험에 쓰이는 헬라 세포의 전자현미경 사진. 1951년 사망한 미국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에게서 채취한 세포를 계속 증식한 것이다./위키미디어

전 세계 실험실을 떠돌던 영혼이 70년 만에 사과받았다.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31세에 사망한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다. 당시 의료진은 그에게서 암세포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무한 증식했고, 지금까지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인류가 실험실에서 배양한 첫 번째 불멸의 인간 세포인 ‘헬라(Hela)’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랙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누구에게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29일(현지 시각) 미국의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HHMI)는 그의 암세포를 사용한 대가로 기부금 수십만달러를 헨리에타 랙스 재단에 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소의 에린 오시아 소장은 “헬라 세포가 부당하게 획득됐음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며 “과학과 의학이 공정하게 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도 인정한다”고 밝혔다. 대형 과학 연구 기관이 헬라 세포를 무단으로 실험에 쓴 데 대해 재정적 배상을 한 건 처음이다.

이번 사과를 촉발한 건, 올해 비무장 흑인 남성이 경찰이 살해되면서 발생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인권 운동이다. 하워드 휴스 의학 연구소는 세계 최대 생의학 민간 연구 기관으로서 과학에서 자행된 인종적 불공정 행위를 청산하는 선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랙스의 손녀인 제리 랙스-웨이는 “내가 모든 사람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가족 일부는 이번 배상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며 “다른 연구소도 이번 선례에 따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1940년대 후반에 찍은 헨리에타 랙스(왼쪽). 오른쪽은 헨리에타 랙스에게서 채취해 지금도 의학용으로 활용되는 헬라 세포. 세포의 특정 부분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특수 염색 처리했다.



생전 헨리에타 랙스와 그의 남편 데이비드. 사후 헨리에타의 암세포가 전 세계 연구소에서 실험용 세포로 활용됐다./랙스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