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루카센코 대통령이 지난 4월 26일 체르노빌 참사 3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있다./AP 연합뉴스

지난해 부정선거 논란이 빚어진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의 반(反) 정부 인사가 23일(현지 시각)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체포됐다. AFP통신은 벨라루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67) 대통령이 야권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넥스타’(NEXTA)의 전(前) 편집장인 라만 프라타세비치(26)를 체포하기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해 여객기를 자국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고 전했다. 27년째 장기 집권 중인 루카셴코는 지난해 8월 치른 대선에서 승리해 2025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부정선거라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시위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공항에서 23일 공항 직원이 수색견을 데리고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 보잉 737-8AS의 화물을 수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긴급 체포된 프라타세비치는 이날 그리스 아테네-리투아니아 빌뉴스 노선을 운항하던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를 타고 여행하던 중이었다. 기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를 받고 여객기가 민스크 공항에 비상착륙하자 그는 곧바로 현지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폴란드에서 도피 생활 중이었던 프라타세비치는 지난해 벨라루스의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부추긴 혐의로 당국의 ‘테러활동 가담자’ 목록에 오른 인물이다.

친정부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풀 페르보보’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직접 여객기 비상착륙을 지시했고, 여객기 호송을 위해 미그(MiG)-29 전투기를 출격시키도록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야당이 정권 이양을 위해 만든 조직인 조정위원회의 간부 라투슈코 전 장관도 “민스크 관제센터가 (비상착륙을 요구하며) 여객기를 격추하겠다고 위협했으며, 이를 위해 MiG-29기를 출격시켰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23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가던 라이언에어 4987기가 벨라루스 민스크공항에 강제착륙한 항로를 보여주는 플라이트레이더 지도./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대선 후보로 출마해 루카셴코 대통령과 경쟁했던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텔레그램을 통해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하기 위해 (벨라루스) 보안기관이 여객기를 납치하는 작전을 편 것이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은 이번 사건에 대해 벨라루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에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모든 승객은 (리투아니아) 빌뉴스로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도 이날 트위터에 “벨라루스 정부는 여객기 안에 타고 있던 모든 승객과 해당 여객기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