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9일(현지 시각) 미국 켄터키주 프랑크포트의 구직센터에 일자리를 구하려는 구직자들이 줄을 서 있다./AP연합뉴스

호주 시드니의 한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일하던 30대 비서 앤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직장을 잃은 후 지금까지 백수 상태다. 7일(현지 시각) 호주 일간 오스트레일리안 보도에 따르면 앤은 지난해 말 호주 내 코로나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새 일터를 잡아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비서를 구하는 곳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호주의 기업 비서·개인 비서 채용 공고는 2019년보다 각각 28%, 37% 급감했다. 호주 경제 일간 파이낸셜리뷰는 이날 “코로나 사태 이전 정부 보고서는 2024년쯤부터 비서직 일자리 급감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3년이나 빨리 현실이 됐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의 일자리 종말 시계를 앞당기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7일 400쪽에 달하는 ’2021 고용 전망' 보고서에서 “코로나 사태 여파로 전 세계에서 1억140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상당수의 ‘코로나 실직자’들이 일시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종사하던 일 자체를 잃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OECD 37국의 경우, 코로나로 인해 실직한 사람은 2200만명인데, 이 중 800만명은 일자리가 아예 사라지거나 기계 등으로 대체돼 돌아갈 곳이 없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로 일자리 퇴출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우선 재택근무가 어렵고, 기계 대체가 가능한 업무 종사자들이었다. 캐셔(계산원)·사서·속기사·여행사 직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닭 요리 체인점 ‘리스페이머스레시피치킨’은 코로나 기간에 드라이브 스루(차에서 주문·포장) 매장을 늘리면서 고객의 말소리를 인식해 주문을 받아 적는 음성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 피츠버그국제공항은 지난해 미국 최초로 자외선 로봇 청소기를 공항에 투입했다. 영국에서는 밭일을 맡겨오던 해외 노동자들이 코로나 봉쇄령으로 입국이 어려워지자 딸기 재배와 잡초 제거 로봇을 개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때 대학 졸업 학위가 없는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던 직업 중 하나였던 비서직은 예상보다 빠른 종말을 맞는다”며 “챗봇 등 인공지능(AI) 서비스와 업무 전산화 덕분에 비서들의 주 업무인 스케줄 관리·교통편 예약 등이 쉬워진 상황에서 기업 임원들이 자리를 비우게 되니 퇴출 1순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OECD 보고서는 “향후 3년간 단순 업무 일자리의 3분의 1이 추가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코로나가 가져온 경제 손실을 메꾸기 위해 고용주들은 새로운 기술로 인간 업무를 자동화하는 선택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일자리를 보전한 사람들은 주로 고소득·고학력자들이다. 이전의 일자리 전망 보고서들이 AI와 전산화 등의 발전에 따라 빠르게 퇴출될 것으로 예상했던 금융·보험 업계 종사자들은 의외로 잘 살아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종사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대부분 재택근무가 가능해 기업에서 해고할 요인이 적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화상회의나 채팅 위주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기존과 비슷한 수준의 업무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고용주가 즉각적인 대안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와 상관없이 AI, 업무 자동화 시스템 등의 성능이 높아지면 고소득·고학력자들의 일자리도 장기적으로는 변동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OECD는 전망했다.

코로나 기간에 구인 수요가 늘어난 업계는 의료 분야와 녹색 에너지 분야였다. 코로나 환자가 늘고 원격 의료 시스템 가입자가 미국·중국 등에서 크게 늘어나면서 의료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각국 정부가 태양열, 풍력 등 녹색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이에 대한 인력 수요도 증가했다.

스테파노 스카페타 OECD 고용·노동·사회 이사는 “각국 정부는 고용 보조금, 직종 이동 상여금 등을 통해 구직자들의 재교육을 도와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분야로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면서 “어느 때보다 직업 훈련과 전문성 향상이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수많은 소매업과 서비스업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