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미국 민주당의 앤드루 쿠오모(63) 뉴욕주지사가 사퇴를 발표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10일(현지 시각) TV 생중계 연설에서 “나는 뉴욕을 사랑하고, 뉴욕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며 “업무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했다. 사퇴 시점은 14일 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주 검찰이 지난 3일 쿠오모 주지사가 전·현직 보좌관 11명을 성추행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한지 일주일만에 사퇴 선언을 한 것이다.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그가 사퇴를 선언한 것은 ‘탄핵을 통한 강제 퇴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쿠오모 주지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2세 정치인이다. 1983년부터 12년간 뉴욕 주지사를 지낸 그의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의 뒤를 이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20대 시절 아버지의 주지사 선거를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2년 로스쿨을 졸업한 직후 아버지의 선거캠프에 합류했고, 아버지가 뉴욕주지사에 취임한 이후 정책보좌관을 맡았다.
쿠오모 주지사의 정치 인생은 성추행 의혹 직전까지 평탄했다. 1990년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명문인 케네디 가문의 사위가 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대선 과정에서 암살 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딸 케리다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3년에는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2006년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서 당선된 후 월가의 부정부패 수사 등을 지휘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2010년 뉴욕 주지사에 출마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지원사격 아래 당선됐다. 쿠오모 주지사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뉴욕에서 3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에는 인기가 급상승했다. 매일 코로나 상황을 꼼꼼하게 설명하는 브리핑을 주관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고, 방역 문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맞서며 뉴욕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법무장관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그의 성추행 의혹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쿠오모 주지사의 보좌관이었던 30대 여성이 트위터를 통해 수년간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피해증언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뉴욕주가 장기 요양시설의 코로나 사망자 통계를 고의로 누락해 집계했다는 의혹과 함께 자신의 방역 리더십을 자화자찬하는 비망록을 출판해 수십억 원을 벌어들였다는 비판까지 받게 됐다. 현지 언론들은 쿠오모의 몰락은 극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