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치렀다. 2001년 이슬람 테러 집단 ‘알카에다’가 민간 여객기를 납치해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워싱턴 펜타곤 건물을 공격한 9·11 테러 직후 시작됐다. 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 4개 행정부를 거치면서 최근까지 20년을 끌어왔다. 베트남 전쟁 기간(14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은 이 전쟁에 2조2610억달러(약 2531조원)를 쏟아부었고, 미군 2442명이 희생됐다.
전쟁 첫해인 2001년 11월 미군 주도 연합군은 탈레반을 축출했다. 아프간은 과도 정부를 거쳐 2004년 친서방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규모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10만명까지 늘어났다. 미군은 아프간 군경을 훈련시키고 탈레반 장악 지역을 집중 공습하는 등 아프간을 장악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현지 지형에 능한 탈레반의 거센 저항이 계속되면서 결국 탈레반 소탕엔 실패했다. 전쟁 비용 및 사상자가 계속 불어나자, 미국 내에선 ‘가장 오래 싸운 전쟁’을 이젠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갔다.
결국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탈레반과 직접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발을 빼기 시작했다. 올해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철군 계획을 가속화했고, 이달 말까지 미 대사관을 경비할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철군할 예정이다.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역대 강대국들이 쟁탈전을 벌였지만, 모두 고전(苦戰)을 면치 못해 ‘제국들의 무덤(graveyard of empires)’으로 불려왔다. 험준한 산악 지형, 열악한 기후 조건과 함께 토착 세력의 강한 저항에 밀려 열강들이 침공했다가 철군한 사례가 많다. 미국도 당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아프간에 진입했다가 사실상 아무런 성과 없이 철수하는 처지가 됐다.
미군 철수 직후 아프간이 순식간에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지면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군이 철수할 경우 아프간에 또다시 혼란이 찾아올 것이란 우려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군 철군이 예상되던 지난 4월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1975년 베트남에서 철수,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진 것과 같은 악몽을 다시 겪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보도했었다.
이런 가운데 NYT는 12일(현지 시각) 미 국무부의 칼메이 칼리자드 아프간 특사가 이끄는 협상팀이 탈레반에 카불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할 것으로 보고 자국민 안전을 위해 탈레반과 협상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미 공화당은 이런 상황에 대해 비판적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아프간 철수는 오바마 정부의 이라크 철수만큼 위험한 결정”이라고 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탈레반 측에) 철군의 대가로 조건을 달았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현 상황은) 완전히 다르고 지금보다 훨씬 성공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