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트럼프’로 불리는 세바스티안 피녜라(72) 대통령이 직권(職權)을 이용해 가족 기업을 고액 매각한 의혹이 제기되며 탄핵 위기에 몰렸다.
AFP통신은 칠레 야권 의원들이 13일(현지 시각) 피녜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탄핵안을 발의한 토마스 히르치 하원의원은 “대통령이 공직을 이용해 개인 사업에서 이익을 얻었다”고 비판했다. 피녜라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고, 칠레 대선은 다음달 21일 치러진다.
피녜라 대통령의 탄핵 위기는 지난 3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판도라 페이퍼스(문건)’로 인해 촉발됐다. 이 문건은 전 세계 전·현직 정상 35명과 90여 국의 고위 공직자·정치인 330여 명 등이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설립해 거액의 재산을 은닉하고 탈세를 해왔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피녜라의 첫번째 대통령 임기(2010∼2014년) 당시 그의 자녀가 소유한 광산기업 ‘도밍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매각됐다는 의혹이 포함됐다.
문건에 따르면 2010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피녜라 대통령의 지인은 도밍가를 1억 5200만 달러(약 1812억원)에 사들였다. 문제는 계약 체결 당시 ‘(정부가) 도밍가 소유 광산이 위치한 지역에 환경보호구역을 설정해선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녜라 정부는 해당 지역의 어떤 곳도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피녜라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12년간 기업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도밍가 매각 과정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또 칠레 사법당국이 2017년에 이미 해당 의혹을 조사했으며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분노가 커지자 칠레 검찰은 도밍가 매각 과정에서 뇌물 수수나 조세 회피 등 범죄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논란으로 다음달 21일 칠레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야권인 진보 진영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관측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누구?
피녜라는 중도우파 성향의 칠레 대통령이다. 유엔 주재 칠레 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미국, 벨기에 등지에서 자랐다. 칠레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말 신용카드를 칠레에 도입하는 사업에 참여했고, 이후 지상파 방송 인수, 중남미 최대 항공사인 ‘란(LAN)’과 유명 축구클럽 콜로콜로 등의 지분에 투자해 억만장자가 됐다. 2009년 대선에서 승리해 20년간 계속된 중도좌파 시대를 끝내고 우파 정권을 출범시켰다. 2017년 대선에서 또다시 승리하면서 두 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