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험이 좋다. 아주 용감하거나 무식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74)이 영국 가디언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가디언은 4일(현지시각) ‘미나리의 윤여정: 나는 좋은 의미의 이상한 모습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가디언은 “윤여정은 작년 미나리에서 당신들이 가졌으면 하는 장난기 많은 할머니를 연기했다. 실제 윤여정의 모습도 그와 꽤 비슷하다. 활기차고, 유쾌하고, 꾸밈이 없으며, 요리를 잘 하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74세의 배우인 그는 관습에 얽메이지 않는 삶과 경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의 극히 일부만 알고 있다”며 윤여정을 소개했다.
윤여정은 “내 문제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다는 것”이라면서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배우가 된 것 또한 계획하지 않은 일이었다. 윤여정은 “우연이었다”며 “1960년대 후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어린이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는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진행자가 자신의 옆에서 청중들의 선물을 받을 것을 부탁했고, 그렇게 한 뒤 큰돈을 받았다. 그 다음 주에 있을 오디션을 보라고 했고, 합격했다. 몇 달 만에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주연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솔직히, 급여가 좋았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윤여정은 데뷔한 뒤 드라마 ‘장희빈’에서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영화 제작사들로부터 제의를 받았으나 보통 가난한 소녀가 부유한 소년을 만나고, 남자의 가족들이 반대하는 류의 이야기였다. 모두 같았고, 내게는 아주 지루했다”고 했다. 이후 1971년 영화 ‘화녀’로 김기영 감독을 만났다. 가디언은 ‘화녀’에 대해 “오늘날 봐도 파격적이다. 간통, 강간, 낙태, 살인, 자살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의 계급적 분열과 가부장적 전통을 꼬집는다”고 평했다. 이어 “당시 한국 사회는 남성 중심적이었고, 영화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적이고 솔직했던 윤여정은 그 사이에서, 새로운 유형의 독립적인 한국 여성을 상징하게 됐다”고 했다.
윤여정은 “난 한국의 미의 기준은 아니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예뻐야 했고, 연기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내가 좋은 의미에서, 굉장히 이상한 모습으로 보였을 거다. 매우 현대적이고,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윤여정도 한국이 얼마나 가부장적인지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가수 조영남과 이혼한 뒤 연기 활동을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이혼 여성’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제작자들은 그에게 배역을 제안하는 것을 망설였다. 윤여정은 당시를 떠올리며 “어떤 역할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작은 배역도 맡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냥 일을 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바람난 가족’, ‘하녀’, ‘죽여주는 여자’ 등에서 파격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내 삶이 아닌 누군가의 삶이다”라고 했다.
‘최근에 한국에서 좋은 작품들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한국에는 항상 훌륭한 작품이 있었다. 단지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한 것뿐이다”라고 답했다. 가디언은 윤여정이 미국의 많은 제작사들로부터 배역을 제안 받고 있으나 ‘적당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여정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