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경제 현실이나 이론에 전혀 맞지 않는 ‘막무가내’ 경제정책을 펴는 바람에 터키 리라화 가치가 올해 들어서만 45%가량 폭락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최악 경제난으로 터키 민심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터키 리라화 가치는 장중 사상 최저치인 1달러당 14.75리라까지 급락했다. 올해 초만 해도 1달러당 7리라 초·중반 수준이었는데 1년도 안 돼 절반으로 하락한 것이다. 터키 중앙은행이 개입해 1달러당 14.13리라까지 회복했으나, 전일 종가보다 1.8% 하락했다.
에르도안은 국내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도 중앙은행을 압박해 금리를 계속 낮췄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데, 에르도안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며 시장 움직임과 정반대 정책을 폈다. 수출을 장려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강제로 저금리를 유지했다. 화폐 유통량이 늘고 물가가 오르면 자국 화폐 가치는 폭락한다. 그는 지난 2년간 이런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낸 중앙은행 고위 관료 세 명을 경질했다. WSJ는 터키 경제학자와 전직 관료를 인용해 “에르도안의 막무가내식 통치가 경제난의 주범”이라고 분석했다.
극심한 경제난은 민심 이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지 컨설팅 업체 ‘MAK’ 조사에 따르면, 여당인 정의개발당(AKP) 지지율은 지난주 처음으로 30% 밑으로 떨어졌다. 2018년 6월 총선 때 AKP는 42%를 득표했고, 에르도안은 같은 해 8월 대선에서 52%를 득표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WSJ는 “에르도안의 고향이자 AKP의 텃밭인 북동부 흑해 연안 도시 리제도 현 정권에 등을 돌린 상황”이라고 했다. 가로등과 육교 등 곳곳에 에르도안 사진이 붙어있는 리제의 주민들은 이제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뽑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에르도안이 지지율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1인 철권통치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3년부터 11년간 총리를 지낸 에르도안은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18년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2017년 개헌을 통해 내각제를 임기 5년에 중임이 가능한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꿨다. 중임 중 조기 선거로 재당선되면 5년 추가 임기를 보장받아 이론적으로는 2033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또 대통령이 의회 해산권을 갖고, 고위 법관 임면권도 갖도록 해 입법·행정·사법권을 모두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