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압박으로 최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한편으론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학력 젊은이와 부자들이 독일 등 서유럽 국가로 이민을 떠나는 경우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불안한 안보 상황과 이로 인한 투자 부족이 큰 원인이다. 1993년 514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인구가 현재 4330만명까지 감소했다. 최근 5년 새 줄어든 인구만 100만명이 넘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국경을 넘은 이들이 상당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이 12일 미사일 훈련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겪은 안보 불안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키예프에서 12일(현지 시각) 만난 고등학교 교사 이호르(45)씨는 “러시아 침공설로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널뛰는 것을 보면 16년 전 직접 겪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사태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곳곳에서 난방이 멈춰 영하 2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 동사(凍死)자가 속출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한 이유는 당시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親)서방 노선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2005년 말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던 가스 가격을 단번에 4배가량 올린다고 선언하고, 우크라이나가 거부하자 이듬해 1월 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위협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이렇게 러시아로부터 입은 ‘억압의 기억’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홀로도모르’라 불리는 1930년대 초반 대기근도 우크라이나 국민 상당수가 러시아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갖게 된 계기다. 집단농장을 강압적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최소 300만명의 아사(餓死)자가 발생했다.

러시아는 2009년 1월에도 2주간 우크라이나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협상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의 관세 동맹에 참여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사실상 러시아의 ‘보호국’으로 남으라는 요구였다. 키예프에 주재하는 한 서방 외교관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품 안에 있지 않으면 언제든 러시아의 속국(屬國)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계기”라고 했다. 이 사태는 EU의 막후 개입으로 겨우 막을 내렸다.

한편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13일 “서방과 협상이 실패할 경우 중남미 쿠바나 베네수엘라에 군사 인프라를 배치하는 조처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를(군사적 해결) 원하지 않는다”며 협상을 통한 해결 필요성도 강조했다.